한인수의 강연·심훈 소설의 영화 ‘상록수’에 감화 ‘홍성고 양지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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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수의 강연·심훈 소설의 영화 ‘상록수’에 감화 ‘홍성고 양지회’ 설립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6.01.15 07:04
  • 호수 925호 (2026년 01월 15일)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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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흙 한인수(1936.9.8.~1974.1.7).

■ 홍성 장곡 출신 한흙 한인수(韓仁洙)는?
1974년 1월 7일, 새벽 3시 반, 한 인간의 죽음을 알리는 비보가 전해졌다. 1960년대 농촌 농민운동의 미치광이로 알려진 한인수(韓仁洙)가 흙과 싸워 온 한평생을 고스란히 안고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한인수(韓仁洙)는 1936년 9월 8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천태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4년 명의식과 중심이 돼 예산농업고등학교에서 4-H구락부연구회를 조직해 4-H 발전을 위한 하나의 기틀을 마련했다. 1956년에는 한인수(韓仁洙)가 예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지역 동지들과 함께 조직한 형락원 4-H구락부는 급진적인 발전을 보게 돼 4-H 경진대회에서 많은 종목에 걸쳐 입상을 한 바 있다. 또한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4-H 구락부의 조직 운영을 위해 많은 활동을 했다. 1958년에는 ‘4-H 조직과 운영’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했으며, 1974년 흙에 묻히기까지 39년 동안 평생을 오로지 농민과 흙을 위해 싸우는 데 한평생을 바쳤다.

한인수(韓仁洙)는 스스로 ‘한흙’이라고 곧잘 부르곤 했는데, 집의 문패까지 본명을 쓰지 않고 ‘한흙’이라고 달았던 점은 흙에 대한 꺼질 줄 모르는 억척같은 집념의 표현으로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한인수(韓仁洙)는 항상 ‘농민이 농촌을 버리면 누가 농촌을 지키겠느냐?’는 말을 평생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농민 운동의 길이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터이지만 한인수는 조금도 고통스런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농민의 복지와 지위향상을 위해 문자 그대로 헌신을 한 것이다. 

한인수(韓仁洙)는 무엇보다도 농민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전국 각계각층의 뜨거운 성원이 한데 뭉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농민을 위한 농민의 집이 1969년 3월 대전 도마동에 세워졌다. 이 농민의 집은 4-H 운동의 선구적 지도자인 한인수(韓仁洙)를 비롯해 이종욱, 이규대 등 몇몇 4-H 출신 지도자와 농도원 출신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1966년 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충남을 중심으로 전국 3000여 부락을 순방하면서 1만 2000여 명의 농민들로부터 거둔 쌀 300가마와 각계에서 보내온 성금 등 총 2100만 원으로 착공했다.

대지 4100평, 건평 363평에 현대식 3층 콘크리트 건물로 세워진 농민의 집은 공사가 시작되자 연 1만 4200여 명의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거들었고,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성금을 거두어 희사하자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감동해 건립기금을 지원, 준공을 하게 됐다. 이러한 한인수(韓仁洙)의 노력이 인정을 받아 1966년에는 5·16민족상 사회부문 본상을 수상했으며, 여기서 부상으로 받은 상금 100만 원을 고스란히 농도원 건립에 투입했다. 이때부터 한인수는 이 농민의 집을 전당으로 삼아 전국의 농촌 청소년을 불러 교육하는데 젊음을 불살라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농민의 집을 거쳐 간 농민들만 9000명이 넘었다.

농민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짧은 한평생을 바친 한인수(韓仁洙)는 “내 죽은 후에 내게 남아있는 재산은 ‘무(無)’였다”고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항상 뇌까렸던 말처럼 농민들에게 그의 굽힐 줄 모르는 정신력과 ‘농민의 집’을 남겨주고 자신은 빈손으로 떠난 것이다.

그의 미망인 이선구 여사와 3남매(한진웅, 진걸, 진숙)에게는 집 한 칸, 땅 한 평 남긴 것이 없고 오로지 무(無)만을 남긴 것이었다.

△1936년 9월 8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천태리 출생 △1956년 예산농업고등학교 졸업, 형락원 4-H 구락부 조직 △1958년 ‘4-H 조직과 운영’ 발간 △1963년 복지농도원 설립 △1964년 중앙농민학교 졸업 △1966년 5·16민족상 사회부문 본상 수상 △1969년 제1회 한국농업상 수상(서울신문사) △1970년 국민훈장 석류장 포상 △1974년 1월 7일 영면 
 

홍성 장곡면 천태리 출신의 한흙 한인수가 1966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제1회 5·16민족상 사회부문 본상을 수여받는 모습. 한인수는 상금 100만원을 복지농도원 건립에 투입했다.

■ 심훈의 농촌계몽소설 영화화 ‘상록수’는?

심훈(1901~1936)의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는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 농촌계몽운동을 펼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러시아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이다. 야학 활동을 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은 최용신(1909~1935)으로 알려져 있다. 협성여자신학교 학생이던 최용신은 1929년부터 YWCA의 농촌계몽사업에 참여했고, 1931년 농촌 마을인 경기도 화성의 반월면 샘골(현 안산시 상록구 사동)로 파견돼 아이들에게 한글·산술·재봉·성경 등을 가르치다가 과로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한 대원들을 위한 신문사 주최 위로회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이 만난다.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인 동혁과 여자신학교 학생인 영신은 각자 여름방학을 이용해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했고, 서로의 발표를 통해 뜻을 같이하는 동지임을 확인한다. 두 사람은 의논 끝에 가난한 부모에게 더 부담만 주는 학업을 중단하고, 각자 고향인 한곡리와 청석골에서 농촌계몽운동에 매진하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고, 3년간 계몽사업의 토대를 닦은 후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박동혁은 고향인 당진의 한곡리로 내려가 다양한 농촌 계몽사업을 한다. 농우회를 조직하고 회관까지 마련하는 등 농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반을 조성한다. 반면, 채영신은 청석골에서 문맹퇴치와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계몽활동에 몰두한다. 채영신은 부모들을 설득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고, 한글과 성경, 실용적인 기술들을 가르치며 농촌 주민들의 생활개선에 헌신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활동은 순탄치 않다. 지주의 아들인 강기천은 박동혁의 농우회 활동을 달갑지 않게 여기며, 일제의 농촌진흥회 사업을 빌미로 농우회관을 차지하려 한다. 동혁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지만, 지속적인 방해와 갈등이 발생한다.

채영신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드디어 청석골에 학교를 세운다. 하지만 과로로 인해 그녀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된다. 한편, 박동혁의 동생 박동화는 강기천이 농우회관을 빼앗자 분노해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다. 동혁은 동생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박동혁이 감옥에 있는 동안, 일본에 잠시 유학했다가 건강 악화로 청석골에 돌아온 채영신은 마을 일을 과도하게 돌보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도 “내가 가더라도 우리 학원은 계속해요”라는 말을 남기며 숨을 거둔다. 

채영신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박동혁은 매독을 수은으로 치료하다 죽은 강기천의 소식을 듣는다. 마을에 들어선 박동혁은 전나무, 소나무, 향나무 등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들을 바라보며 농촌운동, 채영신이 못다 한 일을 자신이 계속하겠다고 다짐한다. 박동혁은 ‘상록수 그늘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소설 ‘상록수’는 당시 경기도 화성시 월면(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샘골에 있던 작은 학원에서 일제에 항거하며 애국심과 농촌계몽운동으로 활약하던 중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애를 바친 최용신이란 젊은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로 이 책자를 상록수라 이름하였다.

‘상록수’는 출간 이후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으며, 1961년에 신상옥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상록수’는 한국 근현대문학의 대표작으로, 중등 교과서에 수록돼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농민의 집 대전 복지농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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