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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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7 >
  • 한지윤
  • 승인 2013.05.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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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누나, 나 지금 몇 마리 접었게?"
호진이 으쓱대며 물었다.
"몰라."
수진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620마리야. 이제 380마리만 더 접으면 1000마리다."
말끝을 올리며 호진은 종이학이 가득 담긴 커다란 병을 들어보였다.
"1000마리 학을 접으면 소원을 성취 한댔지? 네 소원은 뭔데?"
수진이 역시 힘없는 소리로 물었다.
"소원? 비밀이야."
병을 쓰다듬다가 얼른 뒤로 감추며 호진이 말했다. 그러나 수진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보고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누나한테만 말해줄까?"
묵묵부답인 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수진을 쳐다보며 호진은 목소리를 낮췄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거 생겨서 돈이 막 생기는 거."
그러니 피식 웃는 수진의 얼굴을 보자 덩달아 풀이 죽은 호진은 생각했다.
"아냐, 빨랑빨랑 어른이 돼서 돈 벌게 해달라고 빌거야."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는 것'
수진은 가만히 속으로 되풀이하며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수진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기 이전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놀고 싶고 쉬고 싶어도, 심지어는 몸이 아파도 일을 나가야 하는 옆집 아줌마들의 모습이 수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수진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호진이 바라는 어른의 모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당장 수미 언니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도 가야할 언니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공장 노동자가 되고 만 것이다.
자신의 미래도 수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흔들고 부인해 보려고 해도 수진에게 현실은 너무 분명한 것이었다.
"큰누나 안 오네."
호진은 하품을 하며 수진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고인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먼저 자."
수진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껌종이, 종이학들을 주워 담고는 이불을 들어 내렸다.
"아냐, 큰누나 오는 거 보고 잘래."
그러나 호진은 말과는 달리 다시 하품을 하며 눈꺼풀을 내려뜨렸다.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호진은 쭈그리고 앉은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수진은 아무 말 없이 호진을 자리에 뉘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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