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장한 어버이 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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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한 어버이 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 유혜종(공주영명고 교목실장)
  • 승인 2013.05.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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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께서 벌써 80순을 맞이하셨네요. 어머니의 구부정한 모습을 뵈면 불초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 사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탓이라 생각하니 어디 머리 둘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집은 징그럽게도 가난했었지요. 다들 어려웠던 시절이라지만 저희 집은 유독 심했지 싶습니다. 집에서 4km나 떨어진 바다를 막아 만든 논 2마지기와 할아버지 산을 개간해서 만든 밭 300평이 재산의 전부였으니까요. 가을에 추수를 하고 이듬해 5월이면 쌀이 떨어져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왕이었습니다. 저희 사남매는 도시락도 못 싸가지고 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배회하던 둘째 동생이 안쓰러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제가 그럴진대 어머니 마음은 어떠셨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너희는 정직하고 근면하게 살아라. 나라의 동량이 되거라”라고 말씀하시며 저희들을 다독이셨습니다.

어머님. 기억하시나요? 어머니께서는 저녁이면 항상 저희 사남매를 아랫목에 앉히시고 그 날 있었던 일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저희들은 그날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씀드렸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얘기를 들으시고 “이것은 잘했다. 그것은 네가 잘 못했다.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거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어른들에게 인사를 공손하고 정중하게 잘하라고 가르치셨고, 예의바른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사남매는 그때의 이야기를 자주 한답니다. 저희들이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이 저희들에게 가장 크고 훌륭한 교육이었고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요.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안 하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던 일이 있었죠? 왜 그랬는지 아시나요? 저는 그때 집안사람들이나 이웃 사람들이 어머니를 찾아와 하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이제 혜종이 중학교 졸업했으니까 돈 벌어 살림 돕게 시키라.” 어머니,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진학은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차마 내 욕심대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나는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너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제 손을 꼭 잡아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하지만 어머니께서 저 때문에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뿐이고 눈물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집 앞 텃밭에서 키운 딸기나 채소, 뒷산 상수리나 도토리로 만든 묵을 광천 장에 나가 팔아 저희 4남매 학비를 마련하셨지요. 어머니를 따라 장에 갔던 저희들에게는 호떡을 사주어 허기진 배를 채우게 했어도 정작 어머니께서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버스비 20원을 아끼기 위해 6km나 되는 집에까지 걸어오시곤 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를 따라 장에 많이 갔던 준종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머니 고생시킬 수 없다고, 포크레인 기술을 배워 돈을 벌겠다고 우등생이었던 녀석이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고 집에 왔던 것입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언제 너한테 돈 걱정하라 했느냐?, 공부 안 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 당장 돌아가라.”라고 하시며 학교로 돌려보내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엉엉 울며 학교로 돌아 간 준종이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공군 대령이 되었습니다.

저희 4남매가 모두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입니다. 제가 홍성고등학교 1학년 때(1974년 10월 24일) 친구의 전도를 받고 처음 교회에 나간 후 은혜를 많이 받고 성령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으로부터 목사가 되라는 사명을 받고, 어머니께, “어머니께서도 교회에 나가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6년 봄에 결단하시고 교회에 나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해 겨울 부흥회 때 성령체험을 하신 후 오늘까지 거의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으시고 자식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간절한 기도 덕분에 장남인 저는 은하초등학교, 광흥중학교와 홍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목원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공주영명고등학교 교목실장으로 26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광천중학교와 예산고등학교를 졸업한 첫째 아우 준종이는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공군대령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군대 중에 공군만 운영하고 있는 특별 전역 프로그램 ASSA(Airman Seif - reengineering & Society Aiod)을 탄생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둘째 아우 낙종이는 결성중학교와 광천상고를 졸업하고 스탠다드 차타드(구, 제일은행) 대전 둔산 지점장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지 못하고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 막내 혜란이에 대하여 늘 미안하고 안쓰러워 하셨는데, 혜란이도 공무원 신랑을 만나 잘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과 기도, 그리고 남다른 교육이 열매를 맺은 것으로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 1994년, 저희들이 힘을 모아 부모님이 세 들어 사시던 오막살이집을 땅과 함께 구입하여 새 집을 짓고 주변 땅 3,000평을 사서 소나무 농장을 만들어 드렸을 때, “나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나는 너희들이 우애 있게 살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 더 고맙다”하시며,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셨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마을 사람들은 “그 어려운 가정형편에 자식들 가르치느라고 고생 참 많이 했는데 자식 농사를 잘 지어 자녀들이 우애 있게 지내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사회에 나가 큰 몫을 하는 것을 보니 자기들 마음이 다 흡족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또한 저 집은 예수 믿고 나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특히 홍성군 은하면 노인 회장 이문수 아저씨는 “4남매를 사회와 나라의 큰 일꾼이 되게 한 최창남 씨야말로 율곡 이이를 키워낸 신사임당과 같은 훌륭하고 장한 이 땅의 어머니”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인정을 받아 대전에 있는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유림장학회로부터 2013년 제 8회 경로효친대상 장한어버이로 선정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5월 29일, 대전 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상을 받게 되고 부상으로 상금 500만원과 상패, 그리고 동판에 ‘장한 어버이 상을 받은 집’이라고 새겨 집 대문에 붙여 준다고 하네요. 이번 8순을 맞은 어머니에게 큰 선물이 된 것 같아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어머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부디 몸 건강하시고 자식들의 효도를 많이많이 받으세요.

2013년 5월 13일 큰아들 혜종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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