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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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8 >
  • 한지윤
  • 승인 2013.05.2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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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으~ 으응."
호진이 눈을 감은 채 일어나려고 했다.
"언니 오면 깨워줄게, 그때까지만 자."
호진은 안심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호진을 보는 수진의 눈꺼풀도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진영은 책을 덮었다. 깨알 같은 글씨들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미의 하얀 얼굴만 자꾸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벌써 닷새째 수미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집을 알아두지 않은 게 후회스럽기만 했다.
'선생님한테 집 주소를 알려 달라고 할까?'
'선생님이 이상한 눈으로 보면 어떻게 하지?'
강선생은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그럴 용기가 없었다.
'늘 우울했던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수미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그 어두운 표정의 이유조차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이 새삼 원망스러웠다.
진영은 의자에서 일어나 카세트를 켰다.
<First time ever saw your face>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눈을 감고 양미간에 힘을 주면서 수미의 얼굴을 잡으려 애를 써보았다.
"너 지금 뭐하는 거니?"
갑자기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어머니의 성난 눈과 딱 맞닥뜨렸다. 그녀는 성큼성큼 카세트 앞으로 다가가 거칠게 버튼을 눌렀다. 방안에 흐르던 노랫소리가 끊어졌다.
"너 지금 몇 학년인 줄 알아?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정신 바짝 차리고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한층 목소리를 높인 한마디 한마디가 깨진 유리파편처럼 진영의 온 몸에 박혀왔다.
"부모 말을 뭐로 듣는 거니? 넌 3대독자 외아들이야. 아버지 병원을 이어 받아야 할 거 아니니. 어휴,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원."
석고상처럼 앉아 있는 진영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노려본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책꽂이를 살펴보았다.
"아니, 이게 뭐야?"
하이네 시집을 펴든 어머니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말을 잇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던 어머니의 손이 책갈피에 끼워 있던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세상에."
잠자코 잇던 진영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왜 이러세요."
기가 막힌듯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어머니에게서 사진을 빼앗으며 진영이 벌컥 화를 냈다. 지난번 소풍 때 독사진을 찍는 수미 옆에 기습적으로 다가서서 찍은 사진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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