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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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9 >
  • 한지윤
  • 승인 2013.06.0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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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너, 그게 뭐야. 응?"
어머니는 사진을 도로 뺏으려고 손을 뻗었다.
"이러지 마시란 말이에요."
진영은 그렇게 말해 놓고 스스로 놀랐다. 어머니는 한 번도 반항애 본 적이 없는 아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렸다.
"이-이, 이 녀석이."
"어머니한텐 아무 말씀도 드릴 게 없어요. 말씀드려봤자, 이해를 못하실 게 분명하니까요."
단호하게 말하고 시집을 다시 책꽂이에 꽂은 진영은 영어책을 펼쳐 들었다.
'아이구 골치야, 아이구."
어머니는 정말로 골치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대고 비틀거리며 방을 나섰다. 진영은 참담한 기분이 되어 책상위에 엎드렸다.
진영은 어딘가를 향해 허겁지겁 달려갔다. 길고 좁은 길을 따라 얼마를 뛰었을까. 열려 있는 커다란 문이 보였다.
진영은 심호흡을 하고 들어섰다. 갖가지 표정의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선채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진영은 빽빽한 사람 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가 팔을 잡았다. 게슴츠레 웃음을 흘리고 있는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팔을 뿌리치고 다시 걸었다. 발이 걸리고 몸이 부딪히고 누군가가 덜미를 잡아끌어 계속 사람 숲에서 헤매었다. 어딘가 앞인지도 알 수 없었다.
거의 울상이 되어 한 사람을 밀쳐냈을 때 갑자기 그의 시야가 탁 트이며 커다란 하얀 종이가 앞에 펼쳐졌다. 깨알 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울고 주저앉고 헹가래치며 난리법석들이었다. 허공에 뜬 종이는 그런 인간들을 비웃듯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진영은 무언가를 찾아 종이를 뒤졌다. 하지만 종이는 약을 올리듯 몸을 이리 빼고 저리 빼면서 진영이 보려는 부분들을 자꾸 감추었다.
성난 진영은 종이를 움켜쥐었다. 도망치려는 종이와 잡으려는 진영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져 종이는 자꾸만 구겨지고 조각조각 찢어졌다.
긴 실랑이 끝에 진영은 손에 쥐어 있는 작은 조각을 발견했다. 네 자리 숫자가 선명히 적혀있는 종이조각이었다.
"야호."
진영은 환호성을 지르며 종이조각에 입맞춤을 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번호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 종이야. 널 다시 붙여줄게."
그러나 종이는 진영을 비웃듯 원산태가 되어 천연덕스럽게 팔랑거리고 있었다. 진영은 휘파람을 불며 이번에는 부러운 듯 바라보며 길을 터주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돌아 나왔다.
문을 나서자 커다란 책방이 가로막았다. 진영은 책꽂이에 있는 시집이란 시집은 몽땅 다 사버렸다. 두 팔 가득 책을 들고 또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녀석, 네 맘대로 될 줄 아느냐?"
갑자기 뒤에서 가래 끓는 듯한 쉰소리가 들려왔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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