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 기름유출사건관련 각종 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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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 기름유출사건관련 각종 의혹 제기
  • 이범석 기자
  • 승인 2008.01.2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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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의 비경과 어민들의 생활 터전인 태안반도. 지난해 12월 7일 아침(어민주장 06시 30분경(현대정유 발표), 정부 07시15분경) 태안군 신도 북서방 6해리 해상에서 정지중인 14만6,848t급 홍콩선적 유조선 ‘헤베이 스피리트(HEBEI SPRIT 원유 26만3,000㎘ 적재 이하 홍콩호)’호를 ‘삼성 T-05(이하 삼성호)’호가 추돌해 원유 약 1만500㎘가 유출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단순한 사고였다면 상처는 덜 할 것이다. 아니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부당국과 사고 당사자인 삼성호에  대한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고가 단순한 것이냐, 의도적이냐 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언론은 정부발표대로 방제작업이 원활하고 오명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보도가 전부였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지금까지 몇몇 언론을 제외하면 과감하게 의혹을 제기한 언론이 없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삼성비자금에 대한 이른바 ‘삼성특검’이 국회를 통과해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여 본격적인 특검 판도가 형성되던 시기와 절묘하게 맞물려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제일의 대기업 삼성은 ‘사카린 밀수, 불법도청, 비자금, 편법상속, 삼성장학생, 떡값검사’등 신종 기업 브랜드(?)를 형성하며 중단 없는 발전을 거듭해 초일류기업으로 고속성장 했다.
본지는 이러한 삼성에 대해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 의혹을 제기하고 독자들의 판단을 받을 것이다. 또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드러난 정황과 증언 및 근거를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고 서로가 한민족이면서도 적국으로 규정해 놓고 대치하고 있으며 이를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들에게 색깔론과 간첩사건, 북한무력 침공설로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과 이슈로 만들어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지 않는가. 그 예로 BBK사건이 터졌을 때 중·장년층은 언제 북한 핵과 무력침공설이 터져나올까하고 관심적인 사안이었다. 그런데 사이코 같은 총기탈취사건이 터졌고, 삼성비리와 함께 태안반도 유조선 기름유출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때문에 핵심은 삼성특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삼성은 총체적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분노하는 대상은 삼성에 종사하는 임직원이 아니라 그렇게 유도하고 만들어가는 당사자들이라는 점이다. 삼성호는 삼성중공업소속의 선박이지만 삼성 그룹의 계열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며 삼성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만도 일백만명 정도여서 한집 건너면 다 아는 지인과 친척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 2007년 12월 7일 삼성호는 일부러 유조선을 들이받았다(?)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건 주민대책위원회에서는 지난해 12월 18일 ‘삼성호와 유조선의 충돌사고 의문점’에 대해서 “07시경 썰물(안흥항 기준 간조 8시 10분) 때 였다. 썰물과 북서풍의 영향으로 정박(앵커링)중인 유조선은 선수가 울도를 향하고 있었고 삼성호는 남해(거제도로 회항 중)를 향해 항해 중이었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이번 사건의 첫 번째 의문점이 제기된다.

▲ 유조선과 삼성호의 충돌부분이 모두 좌현이어야 한다. 그런데 삼성호의 충돌부분은 우현이다. 그렇다면 삼성호는 왜 다시 북쪽으로 항해를 했는가?
또한 “관계기관에서는 충돌 후 4일 동안 오일펜스를 치고 유조선은 물론 각 포구에서 설치 요구 시 오일펜스가 없다는 이유로 설치를 안했다”
이 부분 역시 의문점이 생긴다.

▲ 방제업체 관계자는 “관계기관 회의에서 오일펜스는 잠시 유보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원유가 해안가를 다 덮고 난 뒤인 사고 5일이 지난 뒤 각 포구에 오일펜스가 지급 되었다.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는데 관계기관에서는 어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대처를 하지 않았을까?
다음은 필명이 제닉스라는 한 네티즌이 당시 상황을 목격하고 삼성호와 홍콩호와의 충돌사고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밝힌 부분이다.
사고발생일인 지난해 12월 7일 예인선 T-03호와 T-05호(삼성호 삼성중공업 소유. 이건희 회장 지분 보유)가 인천대교 보수공사(상판 얹는 공사 마무리로 회항 중)에 사용한 해상크레인을 예인하여 경남 거제로 향하고 있었다.
삼성호는 지난 1993년 10월 10일 10시경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여객선 서해페리호가 침몰하면서 292명의 사망자를 내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이 당시 페리호를 인양할 예인선이 국내에 없어 일본 해상크레인을 빌려 인양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삼성중공업은 예인선인‘삼성 T-03, 05’호를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고 발생 당시 홍콩호가 충남 대산항의 현대오일뱅크 부두로 정박 해 도선사를 승선시키기 위해 묘박(앵커링) 중에 있었다. 이때 삼성호는 인천대교 보수공사를 마무리하고 북서풍과 썰물이 진행된 가운데 경남 거제로 순항하며 홍콩호 옆을 지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순항하던 삼성호가 갑자기 역회전(180도)을 하며 홍콩호에 접근, 붕대로 기름 저장탱크 3곳을 추돌하여 원유 10,500㎘가 유출되는 대형 사고를 내었다.
이 부분역시 자연적인 사고였는가 하는 점이 생긴다.
삼성호가 남해안을 향해 항해하는 것은 뒤에서 북서풍이 불어주고 간조 때의 썰물인지라 순풍 돛을 단 듯 순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순항을 마다하고 사람조차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북서풍과 간조 때의 빠른 바닷물 살이 밀려오는 반대방향으로 역 회전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더구나 삼성호가 홍콩호를 지나갈 때 내륙 쪽으로 붙어서 간 것은 정상적인 항해였으나, 홍콩호를 다 지나쳐 빠져나갈 상태에서 삼성호가 갑자기 홍콩호 쪽으로 180도로 회전하여 썰물과 북서풍을 맞아야 했다.
이때 정상적인 회전을 하고자 한다면 홍콩호가 있는 쪽이 아닌 내륙 쪽으로 180도 회전을 했어야 옳다. 그런데도 충돌하기위한(?) 모션을 취하며 실제로 홍콩호 쪽으로 회전해버려 사고가 난 것이다. 정상적인 역회전이라면 사고는 나지 않았다고 목격자들과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즉 자연적인 사고로 보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 충돌 전 두 선박 사이에 대책은 없었나
대산항 지방해양수산청(이하 해양청)에 따르면 사고발생 2시간 전인 4시30분경 홍콩호는 삼성호의 접근을 감지하고 VHF-16(전 세계 공통)으로 교신하고 해양청 역시 삼성호에 긴급타전을 보냈지만 삼성호 측에선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홍콩호는 VHF-16에 나와 있는 삼성호 선장의 비상전화인 휴대폰을 통해 긴급히 연락을 취했지만 삼성호 선장은 ‘지금 와이어(밧줄)가 끊어져 정신이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사고발생 전 1시간)를 끊어 버렸다고 한다. 이어 삼성호가 홍콩호를 들이 받아 기름 탱크 3군데에 구멍이 났고 대량의 기름이 유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대형 선박이 전 세계 공통인 VHF-16번에서 사고발생 2시간 전에 교신을 시도했음도 계속 무응답으로 일관하다 비상전화인 휴대폰으로 교신이 되었을 때 삼성호 선장의 어처구니 없는 답변은 충분히 인위적 사고라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무리 악천후라도 수십년의 항해경력이 있는 선장이라면 와이어가 끊어 졌다고 해서 좌우를 구분하지 못하고 대형 선박 쪽으로 급선회를 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박을 운행할 수 없는 기관 사고나 화재 사고 시에도 교신이 최우선이며 해양청과 사고 선박은 전 세계 공통교신인 VHF-16번으로 인근 선박에 경고 신호도 보내야 한다.
다음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오해와 의혹에 대한 해명 자료를 참고로 보도 한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원인과 초동 대응조치, 방제과정 등 최근 보도내용 중 잘못 알려진 사실 8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잘못된 사실이 전달되지 않도록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 항만당국은 악천후 속에 왜 예인선의 항해를 허용했는가?
=폭풍·파랑·해일주의보 및 경보 등이 발효된 경우에는 해상교통안전법령에 따라 선박의 출항을 통제하고 있으나 이번 예인선(크레인)이 인천에서 출항할 당시(12월6일 오후2시 50분)에는 기상특보가 발효되지 않은 상태였다.

◆ 관제당국은 크레인과 유조선의 충돌위기를 알고도 왜 그렇게 허술하게 대응했는가?
=이미 해명한 바와 같이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 중에 있으므로 좀 더 조사를 해 보아야 그 정확한 경위를 알 수 있다.
=대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는 양측 선박간의 위험상황을 파악하고 사고발생 약 2시간 전부터 예인선측과 VHF채널 16으로 수차례에 걸쳐 교신을 시도하였으나 응답이 없어 사고발생 약 1시간 전에 휴대폰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예인선 선장에게 위험상황을 인지시켰다.
=유조선측에도 안전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이후에도 양측 선박에 대하여 사고예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예인선과 크레인부선을 연결하는 밧줄이 끊어져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선과 유조선이 충돌하고 말았다.

◆ 196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최첨단 방제선’이 하루가 지나서 현장에 도착했다. 왜 그리 늦었고 초동대응에 실패했는가?
=방제선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당일 12시경(사고발생시점으로부터 5시간이내)으로 현장까지의 거리 등을 감안할 때 최단 시간 내에 도착했으나 현장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는 등 거친 파도(파고 4~6m)가 일고 사고선박 선체 파공부위에서 기름과 함께 가스가 유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폭발 위험성을 감지, 사고 선박에 접근하여 방제작업을 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로 인해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사고현장 주위에 대기할 수 밖에 없었다.
=초동대응이 곤란했던 것은 유출유 도착 시간대가 야간이였고 강한 풍랑으로 방제작업을 실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방제 최우선 순위인 환경 민감 지역의 방어를 위해 충남 최대의 양식 밀집 지대이며 원형 보전 갯벌지역인 가로림만 유출 유 차단에 주력했다.

◆ “풍향으로 보아 기름띠는 먼 바다 쪽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하며 느긋해 했다(?)
=과장된 표현이다. 당일(12월7일, 12:40발) 모 언론보도에서는 “해양부 관계자는 ‘앞으로 조류나 기상상태에 따라 유출된 기름이 어떻게 확산될지 결정되겠지만, 이번 사고는 기름유출량이 씨프린스호 당시보다 많아 피해규모도 클 수 밖에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기상이 빨리 좋아져 어서 방제작업이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 “사고직후 출동한 방제선들도 오일펜스 설치 같은 화급한 일을 하지 않았다…자재가 부족해서인가.
=당시 악천후 속에서 어렵게 오일펜스를 민감 지역에 일부 설치하긴 했으나 설치한 오일펜스가 찢어지는 등 역부족인 상황이었으며, 자재가 부족해서 설치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 기름띠를 걷어내는 흡착포 같은 비품과 장비현황은?
=방제초기 방재현장 일부지역에서 갑자기 자원봉사자 등 방제인력이 급증할 경우 병목 현상에 의해 일시적으로 부족현상이 발생했으나, 장비가 부족하다는 최초 보도당시(12월11일)에도 유 흡착포는 118톤이나 재고가 있다.
=또한, 만일의 부족사태에 대비하여 예비비 등을 활용, 일본(40톤), 중국(67톤) 등으로부터 유 흡착포를 긴급 구매하기로 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 첨단장비를 갖추고 매뉴얼에 따른 모의훈련까지 실시한 한국이 양동이와 쓰레받기로 기름 물을 퍼 담는 모습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난해 12월11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한 “일본 미쿠니 마을 30만명의 기적”과 주요 언론에서 보도한 ‘일본의 나홋카호 중유 유출 사고” 방제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안의 모래와 바위를 덮친 기름을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현재 개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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