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음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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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음료 사랑
  • 서정식<칼럼위원·전 대평초 교장>
  • 승인 2013.08.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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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1985년 여름 8월5일에 돌아가셨다. 요즈음 지구 온난화로 여름이 점점 더워지는데 그해 여름도 유난히 더웠다. 장례식장이 없던 시절이라 시골집에서 3일장을 치뤘다. 좁은 마루에 임시로 가설된 마루에서 선풍기 하나로 5형제가 나란히 서서 곡을 하면서 조문객을 맞이했다. 안방에 모신 아버지 시신은 염을 마친 베옷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차일 밑에서 연신 땀을 흘리면서 커다란 함지박과 통에 얼음과 함께 넣어둔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식사를 했고 음식를 만드는 동네 분들과 친지들은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였다.

2008년 가을에 돌아가신 어머니 초상은 장례식장에서 편안히 모셨다. 우리 형제들도 베옷 대신 검정 양복을 입었고 어머니 시신은 냉동실에 모셔 살아가신 듯 했다. 조문객 접대는 넓은 홀에서 정갈한 음식으로 대접했다. 23년의 차이가 새삼 길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위암 말기에 간으로 까지 전이되어 수술이 불가했다. 28년전의 의술이라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너무 늦게 병원에 가셨기 때문이다. 그해 3월초에 병원에 가셨다가 5개월만에 돌아가셨다. 항암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몰핀 등 진통제로 견디셨다. 결국 뼈만 앙상한 채로 고통으로 몸무림치시다 돌아가셨다. 67살이셨다. 나도 3년 후면 그 나이가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2년 후에 동생이 위암 수술을 받았다. 초기이지만 위 전체를 잘라냈다. 그 뒤 위없는 불편한 생활을 겪는 동생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술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 건강한 생활을 하지만 가끔 위없는 불편을 겪는다.

2000년 봄에 친구와 함께 청양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야채음료에 관한 이야기였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병력과 동생의 수술이 우리 형제의 가족력이 되지 않을까 항상 마음속에 무거운 짐이 되었는데 그 짐을 가볍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말기암도 치료할 수 있다는 음료였다. 건강한 사람도 평상시 꾸준히 마시면 면역이 생겨 항암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이었다. 꼼꼼히 적어와 집사람에게 부탁했다.

4년 동안 집사람이 끓여준 야채음료를 마시며 궁금하게도 여겼다. 정말 이 물이 그 사람 말대로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2004년 8월20일자 중앙일보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수도요양병원 성원장의 건강식 기사를 보았다. 똑같은 이야기였다. 다만 야채재료는 같았지만 끓일 때 절대 뚜껑을 열지 말고 채소를 다듬을 때 칼을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무 작은 것 하나, 무청 4~6잎, 당근 중간크기 하나, 표고버섯 1~2개, 우엉 15㎝. 끓이는 방법도 비슷했다. 1.5ℓ들이 병 3개정도 물을 넣고 열을 가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한두시간 2병이 될 때까지 달인다. 끓이는 기구도 같았다. 유리그릇 또는 질그릇.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달이는 최신기구를 사자고 했지만 집사람은 말을 듣지 않았다. 지성이 부족해서 약효가 없다고 하며 유리냄비에 끓인다. 유리냄비 세 개째 사용하고 있다. 그 뒤 지금까지 거의 날마다 13년간 유리냄비로 달인 야채음료를 꾸준히 마시고 있다. 병원에 가서 위 내시경하면 깨끗하단다. 야채음료로 내 몸의 면역력을 강화해 건강한 체질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두 달 전 KBS1 아침마당에서 선재 사찰음식연구소 원장 선재스님의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를 보았다. 공감이 많이 갔다. 나의 생활 습관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행복은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이라 했다. 모든 음식은 생명이고 약이다. 약이 되는 음식은 제철 음식이다. 자연의 리듬, 생명의 리듬을 먹어라. 음식은 곧 나다. 음식이 성품을 만든다.

지구상의 인구 70억 중, 깨끗한 물을 마시고 칼국수에 커피 한잔의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약 10% 남짓하다고 한다. 내게 주어진 밥상을 항상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야채음료를 오른손으로 한 컵 가득 마시며 13년간 유리냄비로 정성을 다해 온 집사람의 사랑을 왼손으로 또 한 컵 가득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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