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상태바
무릇
  • 윤주선(주민기자)
  • 승인 2013.09.08 2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다소 무덥던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마당가 한쪽에 커다란 무쇠솥이 화덕 위에 털썩 주저앉아 픽픽거리며 맘껏 땀을 흘리고 있을 때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커다란 그릇에 둘러앉아 두 손가락을 비틀어 빨며 무엇인지 맛있게들 먹고 있었다, 바로 삶은 무릇이었다. 빡빡 머리에 주위를 맴돌며 멋쩍어하던 나를 잡아끄시던 어머니의 손이 내 입술에 닿는 순간 한 알의 무릇이 내 입속으로 쏙 들어왔다.

맛을 다 음미하기도 전 아리고도 쓰디쓴 그놈의 무릇을 툇~하고 내뱉으며 황급히 달아나고 말았다. 송기(松肌)에 쑥까지 넣어 넉넉하게 삶아낸 무릇은 어느새 둘째 동생 입으로도 들어갔다. 한알의 무릇이 들어가자마자 두 다리를 뻗은 채 손사래를 치며 발버둥 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내 인상까지 찌그러질 때 엄마 등 뒤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던 셋째 동생이 깜짝 놀라 대충 동여맨 포대기가 벗겨져 알궁둥이가 나오는 줄도 모른 채 엄마의 어깨를 넘고 있었다.

생활이 그리 녹록치 않았던 어린 시절, 결코 맛이 있어서만은 먹지 않았을 것 같은 무릇을 그렇게 맛있게 드시던 엄마! 많은 세월이 흘러 생 무릇 밑동보다 더 탱탱하고 곱던 엄마의 이마에는 어느덧 깊게 파인 강줄기가 보이고 생기로 가득 찼던 두 눈가에는 질펀하게 삶아진 무릇보다 더 짓무른 눈물만이 흐르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나른한 봄날 아리고도 쓴 무릇. 이제는 이해할 것 같은 무릇이 생각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