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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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30 >
  • 한지윤
  • 승인 2013.11.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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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30분이 넘도록 그렇게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가게주인인 듯한 여자의 신경질적인 눈초리가 벌써부터 미라의 뒷모습에 박혀 있었지만 미라는 개의치 않고 바깥쪽만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봐. 학생. 여기 물건 사러 들어온 거야? 뭐야?"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여자가 눈 꼬리를 치켜들며 말했다.
"네?"
흘긋 뒤돌아보다가 사나운 눈초리에 부딪힌 미라가 부스럭거리며 바지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눈길을 바깥에 고정시킨 채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고는 유리창에 붙어 있는 인형 중 하나를 툭 잡아떼어 여자에게 내밀었다.
"이거 하나 줘요."
여자가 기가 막힌 듯 콧방귀를 뀌었다. 30분 동안 꼼짝 않고 있다가 겨우 달라는 게 500원짜리 인형이라니. 게다가 만 원짜리 한 장을 불쑥 내밀면서. 여자의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잔돈 없어."
그러나 미라는 들은 척도 않고 계속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여자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진열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잔돈 없으니까, 나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른을 놀리는 거야, 뭐야?"
미라가 건네준 만 원짜리를 도로 내밀며 여자가 등을 떠밀었다.
"알았어요. 밀지 말아요. 나가면 될 거 아네요."
떠미는 여자의 손을 뿌리치며 미라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뭐야? 적반하장이라더니. 이 계집애가 버릇없게 어디다 대고 신경질이야."
여자가 머리채라도 잡아끌 듯 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미라도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자존심 강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미라가 그런 욕설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달아오른 미라가 한바탕 붙기 위해 삿대질을 하며 막 돌아서려다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학교 뒤 언덕으로 통하는 교문 옆길에서 현우의 잿빛 잠바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순간, 미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씩씩거리고 있는 여자를 젖히고 거울 앞에 다가간 미라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서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별 미친년 다 보겠네."
바쁘게 잰걸음을 하고 있는 창밖의 미라를 쳐다보며 여자가 중얼거렸다.
미라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토해냈다. 이상한 일이었다. 수많은 남자애들과 어울리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야릇한 감정이 지금 자신의 마음속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교내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민호를 만날 때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남자애들 사이에서 황제 노릇을 하는 종호 앞에서도 그저 그런 기분이었는데, 난생 처음 설레임과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현우가 처음 교실에 들어서고 그의 눈빛을 보았을 때, 미라는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았었다. 석고상 같은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희디 흰 얼굴은 반항심과 웬지 모를 근심을 함께 풍기고 있었다.
미라는 그동안 현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반항심만 엿보였다면 그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지 못했을 것 같았다. 뭔가를 필요로 하는 듯한, 우울해 보이는 분위기가 자기를 끌어들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성애라고나 할까?
어쨌든 현우가 한 반이 되고나서부터 미라는 항상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스치듯 살짝 입술만 움직여 보이는 미소를 홀리듯 쫓아다니기 시작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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