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보면 그녀는 마흔이 넘은 나이답지 않게 호리호리한 몸매와 고운 피부를 가진 타고난 미인이었지만, 미라에게는 엄마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였다.
"왜 온거니? 가게엔 오지 말라고 했잖아."
잔뜩 부어 있는 딸의 얼굴을 보며 정마담이 말했다. 저 하나 키우기 위해 이 고생인데도 밤낮 툴툴거리는 딸은 가게에 들렀다 간 날이면 한층 더 심통을 부려댔었다.
술파는 신세를 청산할 꿈을 안고 시작했던 동거생활이 남겨준 건 핏덩이 미라뿐이었다. 멀리서 보기에 건실했던 남자는 동거를 시작하자마자 사업을 한다, 어쩐다 하면서 그녀가 5년간 웃음팔고 몸 팔아 모아두었던 통장을 야금야금 좀먹어대더니 핏덩이만 끝내는 남겨두고 줄행랑을 쳤던 것이다. 죽어도 돌아가지 않겠다던 맥주홀로 퉁퉁 불어 오른 젖을 싸매고 나가 찢어지는 속을 독한 양주로 적셔대며, 고아원으로 보내버리라는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지금껏 키워왔던 딸이 바로 미라였던 것이다.
"돈 필요해서 왔니?"
말도 없이 입술만 내밀고 서있던 미라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이봐요오, 미스터어 유우우- 얼굴은 왜 도오오올려-"
잠자코 있던 스피커에서 갑자기 노랫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려 봐"
짧게 내뱉고 안에 들어갔다가 나온 그녀는 미라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됐지?"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퉁퉁 부은 표정으로 돈을 나꿔채는 딸을 바라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으휴! 내 팔자야."
불이 들어와 반짝이는 간판을 앞으로 내가 옮기며 그녀가 영업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미라는 홱 돌아서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현우는 버스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처음에 가운데쯤 서서 걷던 그는 뒤에서 울리는 크락션 소리에 왼편으로 바짝 붙어섰다. 배추, 무우, 감자 등 채소류를 한가득 실은 트럭이 "배추, 무우 등 채소류 있습니다. 감자, 호박, 양파도 있어요." 마이크 소리를 윙윙거리며 천천히 앞질러 갔다.
종호의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처음 우리 반에 들어올 때부터 너를 지켜보고 있었지. 어때? 우리 세븐클럽에 가입하는 게."
그 말을 듣고 뜻밖이라는 듯 저희들끼리 눈길을 주고받는 조무래기들에 개의치 않고 종호가 현우에게 제의해왔었다.
언덕 아래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학교 운동장으로 귀가하는 빽빽한 아이들 모습을 응시하며 현우는 냉소를 띠고 종호를 쳐다보았었다.
"난 겁 많은 메뚜기떼들처럼 몰려다니며 설치고 싶지 않아."
둘러선 아이들이 인상을 쓰며 달려들 듯이 움직였지만
"글세."
종호는 손을 들어 아이들을 제지하고 보스답게 침착성을 잃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었다.
"곡 오늘 결정하라는 건 아니니까 마음먹는 대로 알려줘라. 언제든지 환영이니."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