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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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호박
  • 서정식<칼럼위원>
  • 승인 2013.12.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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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서리가 호박잎을 다 잡아갔네."
11월 중순 새벽에 밖으로 나갔다가 방으로 들어오면서 집사람이 말했다. 엊저녁 소금물에 절인 김장배추를 씻다가 들어 왔다. 나는 "벌써?" 하면서 밖에 나가 보았다. 현관 앞 빈터에 심어 놓은 호박잎이 절인 배추잎처럼 흐늘흐늘하며 바짝 오그라들었다. 그 위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었다. 어제까지 싱싱하게 자라며 여기저기 조그만 애호박을 여러 개 달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하얀 서리가 호박잎을 잡아간 것이다. 잎뿐만 아니라 호박 줄기와 호박꽃, 막 자라기 시작한 호박부터 애호박까지 시들어 버리게 만들었다. 지난봄에 포트에 호박씨를 뿌리고 큰집 하우스에서 모를 길러 심은 호박이다. 재작년에 한차 사다 썩힌 돼지분뇨 거름을 손수레에 여러 번 날라다가 곡괭이로 파놓은 구덩이에 넣고 가꿨다. 빈터와 자투리땅에 여남은 개 구덩이를 파고 한 구덩이에 두세 포기씩 심었다. 4월에 모를 심은 뒤 오뉴월엔 느리게 자라다가 칠팔월 햇볕이 더워지니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사방팔방으로 쑥쑥 뻗어나 줄기 마디마디에 뿌리가 나오면서 더욱 싱싱하게 자라며 호박꽃이 피기 시작했다. 암꽃 수꽃을 번갈아 피면서 암꽃에 호박이 매달렸다. 처음에는 손가락만하더니 며칠 지나니 주먹만한 애호박으로 자랐다. 여기저기 숨어서 자라는 애호박 찾기 참 재미있다. 막대기로 호박잎을 헤쳐 반짝반짝 윤기 나는 애호박을 발견하면 기분이 참 좋다. 애호박보다 더 자란 중간 호박은 된장찌개용으로 많이 쓰인다. 9월에 들어서 호박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애호박을 우리 두 식구가 먹기에 벅찼다. 집사람은 그것을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호박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잎, 줄기, 꼭지, 과실, 종자 등 모든 부분이 식용 또는 약용으로 이용되고 성숙함에 따라 카로틴 등의 영양성분이 증가하여 건강식품으로 각광 받고 있다. 못생긴 여성을 비유하기도 하지만 사실 호박만큼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 도움이 되는 야채도 드물다. 특히 늙은호박에는 황색을 나타내는 천연색소인 카로티노이드계 화합물이 다량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중에서도 비타민A의 공급원인 베타카로틴은 다양한 약리효과가 있다고 한다. 늙은호박은 익을수록 껍질이 연초록색에서 누런색으로 변한다. 누렇게 잘 익은 호박일수록 맛도 좋지만 몸에 좋은 성분도 많이 들어 있다. 늙은호박의 진한 노란 빛은 카로티노이드 색소 때문인데 체내에 흡수되면 베타카로틴이 된다고 한다. 베타카로틴은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것을 막아 암세포의 증식을 늦추는 등 항암효과가 있다.
또한 호박은 열량이 쌀의 1/10에 불과하며 노폐물 배출과 이뇨작용을 돕고 지방의 축적을 막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식품으로 좋은 식품이며 노화방지에 효과적인 비타민E와 카로틴이 풍부해서 고운 피부를 만드는데도 그만이다.
올해에 늙은호박을 열대여섯개 수확하여 그중 여섯 개를 생강, 구절초, 대추와 함께 건강원에 부탁하여 즙을 내렸다. 연년생으로 임신한 며느리를 보양하기 위함이다. 옛날부터 출산 후에는 늙은호박 속에 꿀을 넣어 쪄서 먹었는데 이뇨작용이 좋아 산모의 부기를 빼고 부족해진 영양분을 보충했다. 호박은 늙을수록 당질의 함량이 많다. 호박의 당분은 소화흡수가 잘 되며 당뇨나 비만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당뇨환자나 환자의 회복식으로 좋다. 또한 위점막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어서 위장이 약하거나 위궤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도 효과적이다. 그래서 나는 피로연 뷔페식당에 가게 되면 꼭 호박죽을 먹는다. 이번에 수확한 호박 한통을 잘 벗겨내서 벌써 호박죽을 해먹었다. 호박 속에는 씨가 많이 들어 있다. 호박씨 기름의 스테롤은 전립선을 튼튼하게 해서 초기 전립선 비대증에 효과가 좋다고 집사람이 해마다 호박씨를 까서 하루에 조금씩 먹도록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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