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에요? 그 말이?"
"아, 글쎄.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니까 그러네. 못 믿겠으면 구청에 가서 확인해 보라구."
누군가가 잔뜩 핏대를 올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아이구, 그럼 이 일을 어째. 이제 조금 정 붙이고 살까 싶었더니."
"지금 정이 문제여? 여그가 철거되믄 더 이상 살 곳이 있을성 싶은가?"
수미는 하마터면 양동이를 노칠 뻔 했다. 철거라니… 어머니가 살아계실때부터 쭉 살아오던 동네인데… 조금전 그 아주머니 말대로 지금 갖니 전셋돈 삼백만원 가지고 어디로 가서 살란 말인가! 수미는 양동이를 내려놓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보았다.
너나 할 것 없이 굳은 표정으로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영석엄마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그 곁으로 다가갔다.
"아줌마, 사실인가요? 철거된다는 말이."
"그렇다는구나. 이거 큰일이네."
"언제래요?"
"내년 봄이래."
내년 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현재 상태로도 살아갈 길이 막막한데 철거라니.
수진, 호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 친구들이 얼굴도..
산동네를 벗어나면 전세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던데, 아무리 머리를 짜내보아도 지금 하는 우유배달과 슈퍼마켓 아르바이트로는 길거리에 나앉는 외에 아무런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없는 사람들은 다 죽으라는 거여, 뭐여?"
언덕 저 위쪽에 사는, 내외간에 고물장사를 한다는 아주머니가 투덜거리며 돌아서자 남은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영석엄마도 양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손가락을 꼽아보며 집으로 들어갔다. 보상금 계산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수미는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억제하느라 고개를 들었다. 다른 때와 다름없이 막 돋아나기 시작한 별들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판잣집이나마 자기 집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한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참았던 눈물이 한줄기 주르르 흘러내렸다.
"언니"
언제 나왔는지 수진이가 등 뒤에서 불렀다.
"왜 안 오나 했더니 여기 서있었구나."
수미는 얼른 팔을 들어 눈물을 닦고는 돌아섰다. 가난에 지쳐 매일 짜증을 내도 아직은 어리기만한 가냘픈 동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 일 안 나갈거야? 밥 차려놨으니까 빨리 들어가자."
수진은 양동이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가냘픈 팔뚝은 물이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몸은 휘청거렸다.
"놔둬. 내가 둘게. 자 들어가자."
수미가 양동이를 뺏어들고 걸음을 옮겼다.
"호진이는 뭐하니?"
"응. 자."
"벌써?"
항상 심심하다고 큰 누나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가 오늘은 웬일일까 싶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