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포구의 ‘양주학(楊洲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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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포구의 ‘양주학(楊洲鶴)’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4.01.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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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마량포구에서 새해 해돋이 행사에 참여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보름이 지났다.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자기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각자의 소망은 달라도 건강하고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난해 보다는 더 많은 수입을, 정신적으로는 더 편안한 삶을 소망했을 것이다.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태양은 한 점 구름도 걸치지 않은 채 고요한 바다 위로 모든 소망을 뿜어 올리고 있었다. 서해안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도 장엄함이었다. 덜덜 떨리는 아침 추위 속에서 해돋이에 나선 사람들은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내일을 향한 희망을 호주머니 속에 꼭 쥐고 있었다.
누구나 한 해를 보내면서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그 차액으로 간직한다. 어떻게 보면 그 차액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인(動因)일지도 모른다. 욕망이 존재하기에 저 멀리 어느 대상(object a)은 우리에게 손짓하고 그리로 다가가면 그 대상은 또 아지랑이처럼 달아난다. 그 대상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과정이 삶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멋진 환경에서 아지랑이를 찾아 뛰어다닐 것이고 누군가는 유람선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벌판에서, 잡힐 듯 말 듯한 아지랑이를 찾아 분주할 것이다. 그러나 저 멀리 아리랑이가 사라질 때 우리의 삶은 종말을 고한다. 불교에서 도를 닦아 욕망을 하나 둘 떨쳐 내기도 하지만 욕망의 끝은 죽음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욕망이 삶의 원천인 리비도(Libido)라고 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다. 그 차액이 줄어갈 때 행복감은 커져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오히려 차액을 점점 늘려가고 있다. 정치는 이웃과 함께 잘 살아가도록 하는 ‘모둠의 기술’이건만 잘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사는 사람들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게 한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윤택한 삶을 고대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빚은 자꾸 눈덩이처럼 불어날 뿐이다. 더 열심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많이 가진 자들이다. 타인의 노동을 통해 나의 부가 더 창출되기 때문이다. 아예 일할 자리를 찾지 못한 일부 젊은이들은 백수처럼 빈둥대다 희망을 잃고 욕망을 포기한다.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진정 건강한 사회와 거리가 멀다.
인류가 만들어 온 발전된 문명은 개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자산을 보전하는 일이었고 국가가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중지(衆智)를 모으는 일이었다. 영국의 존 로크는 ‘통치론’에서 국가가 개인의 욕망을 조정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적반하장격으로 국가가 침입자가 되어 공정하지 않게 개인의 삶을 파괴한다면 예방적으로나 사후적으로 그 정부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은 애당초 개인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한 것이 아니라 신탁한 것일 뿐이고 국가는 신탁자의 뜻을 받들어 모셔야하는 수탁자일 뿐이므로 국가의 권력남용 및 무능에 대해서는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행복하고 골고루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권력남용이 없어야 하고 정부의 무능함이 크지 않아야 한다. 장미 빛 유토피아를 내세우며 무리한 정책을 시도하는 정부는 독재로 흐르거나 환상적 탐미주의로 빠지기 쉽다고 칼 포퍼는 지적한다. 그런 국가에서 국민은 부익부 빈익빈의 갈등에 시달리며 사회는 닫힌세계로 질주할 뿐이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인류의 역사를 닫힌세계와 열린세계의 투쟁으로 보았으며 열린세계로의 이행이 인류가 수행한 가장 위대한 혁명 중의 하나로 파악한다. 닫힌세계는 불변적인 금기와 마술 속에 살아가는 원시 부족사회이며 시민생활의 전체를 규제하는 사회다. 열린사회로의 이행은 단단한 이성의 기초 위에서 ‘백두혈통’같은 생물학적 DNA를 강조하는 미개 집단(국가 또는 조직)을 해체하는 일이며 나는 정상인데 너는 비정상이어서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독선도 배제하는 일이다. 열린사회로 가는 유일한 길은 금수(禽獸)로 돌아가지 않는 일이다.
열린사회는 인간답게 사는 공간이며 그곳으로의 이행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올해는 냉철한 선거를 통해 열린사회로 조금 다가가길 기원해 보았지만 새해 마량포구에서 잠시 양주학(楊洲鶴-중국고사의 나오는 헛된 욕망)에 올라타고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
*양주학:중국 고사에 나오는 헛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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