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1 >
상태바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1 >
  • 한지윤
  • 승인 2014.01.23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진영이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학년 때쯤 하이네의 ‘아스라’라는 시를 읽고 잠못 이루면서 그의 열병이 시작되었으니까.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시를 읽어댔다. 브라우닝, 롱펠로우, 워즈워드에서부터 이해인과 서정윤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하이네만큼 완벽한 시를 쓰는 시인은 없다는 것이 수많은 시를 편력하고 난 뒤의 결론이었다.
오랜 친구의 웃음을 던져주고 있는 듯한 빛바랜 누런 책장을 내려다보며 진영은 짧은 한숨을 토했다. 어머니의 차가운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하냐?”
누군가가 등을 툭 쳤다. 돌아다보는 진영을 쳐다보는 현우의 얼굴이 보일 듯 말듯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는 진영의 손에 들려 있는 책을 흘깃 넘겨다보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선생님이 뭐라고 하던?”
진영은 시집을 들킨 것이 쑥스러워 얼른 책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는 현우가 마음에 드는 녀석이긴 하지만 시를 좋아하는 자신을 이해해 줄건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별 일 아냐.”
현우는 괜시리 발 앞꿈치로 가로수 밑둥을 차며 말끝을 흐렸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기분이 언짢은 게 역력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 그만 가자.”
불안한 눈초리로 탐색하듯 쳐다보는 진영의 눈길을 피하며 현우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진영이 걱정을 거두지 못한 얼굴로 따라나섰다.
“내가 어떤 녀석인지 잘 모르지?”
현우가 저만치 앞쪽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진영이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현우를 쳐다보았다. 앞뒤로 앉은 지 일주일이 넘도록 도무지 말이 없던 현우였기에 진영은 호기심과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왜 전학 왔는지 아니?”
현우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진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으며 현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말이 전학이지 실은 퇴학당한 거였어.”
현우의 자조 섞인 말에 진영이 놀라움을 목뒤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현우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것도 처음이 아니었지. 고등학교 3년 동안 학교를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으니까.”
진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우의 눈빛에 항상 고여 있는 정체모를 그늘의 실체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에잇. 이렇게 표현력이 부족해서야 원. 이럴 때 진짜 시인들을 어떻게 말할까?” 현우는 말을 잊은 채 몇 걸음 걷다가 어떤 건물 앞에서 멈추어 섰다. 코리아은행이 들어서 있는 회색의 그 건물 앞쪽에는 허리춤만한 높이의 기다란 화단이 서있었다. 현우는 그 화단 모서리에 걸터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데?”
진영은 현우가 입을 다물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에 조바심이 나서 말을 꺼냈다.
“어렸을 때 난 아버지를 좋아했어. 작문시간에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서 쓰라고 했을 때에도 아버지에 대해서 썼었거든.”
잠시 입을 다문 현우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난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지.”
현우는 한숨을 내쉬며 호기심과 정이 담뿍 담긴 진영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