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4 >
상태바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4 >
  • 한지윤
  • 승인 2014.02.20 1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야! 요즘 세상에 미팅 한번 안 해보고 이 황금같은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냐?”
“아, 글쎄. 난 그런 데에 관심 없다니까.”
경우는 인상까지 찌푸리며 사양했지만 재민은 막무가내였다.
“특히 너 같은 공부벌레야말로 꼭 해봐야 한다구. 영어문제, 수학문제 잘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인에게 상식이 된 미팅, 즉 인생경험 하는 것도 무시할게 못된단 말이야.”
“공부 때문이 아냐. 난 그런 일에 취미 없어.”
“야, 그렇게 샌님 같은 말만 해봐라. 윤리선생처럼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썩은 수세미 모냥 우그러진다, 너.”
경우는 50은 넘어 보이는 윤리선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지만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오경우. 죽어도 싫다면 강요는 안 하지.”
재민은 갑자기 심각하게 표정을 바꾸며 경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인생경험 운운하는 건 너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였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 좀 도와주라 응?”
미팅을 나가는 것과 도와준다는 게 무슨 상관인가 싶어 경우는 의아한 얼굴로 재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도 알다시피, 이 형님이 수려한 용모와 타고난 재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요게 없지 않냐?”
재민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그런데 이 불쌍한 중생을 굽어 살피소사 하느님이 어젯밤 꿈에 계시를 내려주셨단 말야.”
경우는 “그럼 그렇지, 실없는 자식” 이라고 속으로 뇌까리며 잠자코 듣기만 했다.
“글쎄, 어젯밤 꿈에, 어젯밤 꿈에.”
재민은 말을 잇지 못하고 꿈꾸는 듯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두손을 모아 가슴에 대었다.
“짜식, 재롱떨고 있네.”
더 이상 지켜보면 똑같이 한심한 놈이 될 것 같아 경우는 한 마디 내뱉고는 발걸음을 떼었다.
“야! 오경우! 너 이렇게 중요한 대목에서 그냥 가면 내 친구도 아니다, 임마!”
뒤통수에 대고 내지르는 재민의 소리에 경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뭔데? 말 좀 더듬지 말고 빨리 얘기해, 임마. 나 바쁘단 말야.”
실없는 장난에 맞장구나 치고 있기 싫다는 표정으로 경우가 이야기 하자 재민이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말을 꺼냈다.
“글세 어젯밤 꿈에서 내가 왕조현과 결혼을 했단 말야.”
재민이 눈을 감고는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신랑신부 뒤에 강아지 한 마리가 안 쫓아오든?”
“뭐?”
“잘 생각해봐. 개꿈에 개가 빠질 리가 없잖아.”
넋 빠진 듯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놀려대는 경우의 말투에도 재민은 개의치 않고 계속 싱글벙글대었다.
“그 꿈이 무슨 의미겠냐? 바로 하느님께서 오늘 미팅에 왕조현 같은 끝내주는 애를 보내주겠다는 게 아니고 뭐겠냐? 오경우, 네가 진정 내 친구라면 일생에 단 한 번 올까말까 하는 이런 기회를 그냥 넘겨버리게 해서야 되겠냐?
재민은 다시금 심각한 얼굴로 돌아와 경우의 손을 움켜쥐고 흔들어댔다.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불쌍한 거지에게 적선하는 셈 치고 나 좀 도와주라 응?”
“야. 네가 왕조현 만나는 것하고 내가 미팅하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야. 너 혼자 나가면 되잖아.”


…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