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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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5 >
  • 한지윤
  • 승인 2014.02.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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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끈질기게 졸라대는 녀석이 귀찮아서 경우는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상관이 있지. 너도 알겠지만 내가 얼마나 순진하고 순수한 놈이냐? 가슴이 떨려서 도저히 혼자는 못나가겠단 말야. 너라도 곁에 있어야 유머와 재치라는 내 매력이 나올 수 있단 말야. 제발 나 좀 살려주라. 이렇게 애원할게.”
재민은 이젠 손까지 싹싹 비벼대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경우는 웃음기가 가신 정말 심각한 재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짜식. 급하기는 되게 급한가보군. 나한테 빌기까지 하고.”
손을 비벼대는 녀석 앞에서 경우의 마음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에잇. 찰거머리 같은 녀석, 내가졌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데 하나밖에 없는 친구 소원 못 들어줄까. 그래 가자 임마.”
재민은 금방 환한 얼굴이 되어 경우를 와락 껴안았다.
“어유, 징그러워 임마.”
경우는 따라 웃으면서도 재민을 밀쳐냈다.
“단, 따라가 주기는 하겠지만 금방 나올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그래, 그래.”
아무려면 어떠냐며 재민은 신이 나서 제과점을 향해 앞장을 섰다.
“줄리엣이에요.”
줄리엣이라 쓰인 쪽지를 긴머리의 여학생으로부터 건네받은 주동자 여학생이 이쪽 편 주동자인 한택에게 말했다.
“야! 누가 로미오냐?”
경우는 손에 쥔 쪽지를 내려다보았다. 로미오라는 글씨가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방금 쪽지를 건네준 여학생을 곁눈으로 슬쩍 훔쳐보았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을 숙이고 있는 여학생의 블라우스가 눈이 부시게 희었다.
“누구야? 빨리 말해.”
옆에 앉은 재민이 경우의 쪽지를 넘겨다보고는 한택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기야, 여기”
재민이 손가락으로 경우를 가리키자 여학생이 수줍은 미소를 띄며 고개를 들었다. 경우를 쳐다보는 커다란 눈이 반짝 빛났다.
“두 사람 일어나세요.”
재민이 경우의 손에서 빼앗아 건넨 쪽지를 받아 확인한 한택이 말했다.
“자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됐으니까 저 끝자리에 마주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야, 빨리 가. 꾸물대는 건 매너가 아냐.”
재민이 경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경우는 하는 수 없이 일어서서 맨 끝 자리로 가서 앉았다. 파트너가 된 여학생도 조용히 일어나 앞자리에 와서 마주 앉았다. 경우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계속 진행되는 짝짓기만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다음. 이도령은 어느 분이죠?”
주동한 여학생이 한택에게 다음 여학생의 쪽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재민의 곁에 앉아있던 아이가 일어서서 경우 옆으로 가 앉았다.
“심순애예요.”
“이수일”
세 팀이 나가고 덩그러니 네 명이 남게 되자 재민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상대편에 앉은 두 여학생은 떨리는 듯 서로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여자애는 완전히 프로레슬링 선수 엄청녀의 복사판이었다.
“하느님. 저를 버리시진 않겠죠?”
재민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두 손을 부여잡고 기도를 올렸다. 살며시 손을 펴 구겨진 쪽지를 펼쳐보았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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