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꽃과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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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꽃과 나물
  • 권기복<홍주중 교감, 칼럼위원>
  • 승인 2014.03.1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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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봄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꽃과 나물’이다. 누군가에게 귓결로 들은 바, 봄(春)이 ‘보다’의 명사형인 ‘봄(視)’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봄(春)은 볼 것이 많음에는 틀림없다. 볼 것 또한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 맛보는 것까지 이르게 하면 ‘꽃과 나물’은 필자가 해마다 기다리는 봄의 선물이다.
꽃이 피는 시기는 지역마다 다르다. 열대지역에 사는 사람은 1년 내내 피는 것이라 할 것이요, 한대지역에 사는 사람은 여름 한 철 잠시잠깐 피는 것이라 할 것이다. 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남부지방에서는 산수유가 3월 초순에 핀다고 할 것이요, 중부지방에서는 3월 중순에 피는 꽃이라 할 것이다. 아무튼 봄의 전령사는 노란무늬를 한 산수유와 수선화, 개나리, 복수초 등이다. 그 뒤를 이어 진달래, 매화, 벚꽃, 살구꽃, 목련 등 온갖 무기들이 꽃대포를 작렬한다.
필자는 종종 봄 길을 지나다가 먼 산 곳곳에 진달래나 산벚꽃이 작렬한 광경에 홀려 넋을 잃을 때가 많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그 앞에 당도하여 꽃무리 속에 서있는 개체가 아닌 일체가 된 착각에 젖곤 하였다. 어린 시절, 눈깔사탕이 1원에 20개이던 때였다. 쌀 한 가마가 담기는 마대포대에 진달래꽃잎을 가득 따서 내면 10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아이들에게 봄철의 유일한 용돈벌이 수단이었다. 더 많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진달래꽃밭을 찾아서 가다보니, 마을에서 족히 십리길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산자락은 진달래꽃으로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금세 자루에 진달래꽃잎이 불룩해지는 맛을 느끼면서 다른 애들보다 더 따는데 열중하였다.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한동안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정체를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는 족히 떨어진 산봉우리에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어떤 친구가 “저 사람 문둥이야. 문둥이는 애들 간을 빼먹고 산대”라고 말했다. 그 순간 함께 간 친구들의 마음에 공포감이 일어났다. 이를 떨치기라도 할 셈이었는지, 한 친구가 그 사람을 향해 외쳤다. “야, 이 미친 문둥이 놈아! ……” 뒷말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친구가 외쳤다. “쫓아온다” 그 말과 함께 마대자루를 질질 끌며 정신없이 달아났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서 뒤돌아보니, 성큼성큼 뛰어오는 그 사람과의 간격이 금세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힘들여 진달래꽃잎을 따 모은 마대자루를 팽개치고 뛰었다. 뒤에서 고함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땀에 흠뻑 젖은 고무신은 자꾸만 벗겨졌다. 고무신을 벗어서 양 손에 들고 뛰었다. 누군가가 “야, 이제 안 쫓아온다”라는 말에 멈춰 서서 되돌아보았다. 정말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자 발바닥이 무척 아팠다. 양발이 상처투성이였다. 발바닥은 나뭇가지에 찔리고, 돌부리에 찍혀서 넝마가 되어 있었다. 해가 갈수록 공포심이 옅어지지만, 필자에게 봄은 서스펜스(suspense)한 추억이 더욱 붉게 만든다.
필자의 선친은 농사일을 정말 싫어하신 농부였다. 어쩔 수 없이 봄 들녘에 나가도 논, 밭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남의 논, 밭처럼 휘 둘러보고는 종적이 없었다. 이러저러한 걱정을 하는 어머니 앞에 끼니때에 내놓는 것은 갖가지 산나물이었다. 어머니가 뜯는 쑥과 냉이는 주로 시장에 팔기 위한 것이고, 선친의 산나물은 반찬거리였다. 그저 보리밥에 고추장 한 숟가락 풀어서 비벼먹던 시절에 선친의 산나물은 쇠고기반찬 그 이상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나물 맛을 볼 생각에 봄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누이가 있었다. 그녀는 양장점에 취직하여 자투리 옷감으로 자신의 교복을 만들어 놓고 바라만 보았다.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 그녀는 그 교복을 입고 고향집 논두렁에서 쑥을 뜯고 있었다고 한다. 그 시인은 누이가 뜯어 와서 끓인 쑥국의 맛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봄(春)은 추억을 건너다보는 징검다리이다. 그 추억 언저리에는 ‘백마고지의 은가락지’를 연상케 만드는 꽃들의 전쟁이 있고 입맛을 잃은 밥상머리에서 군침을 돋구어주는 나물들의 만찬이 있다. 산업사회에 뛰어든 이후로 저 만치 떨어져 있는 필자에게 아련한 꿈을 보여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해마다 봄은 다 지나갈 때까지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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