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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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열풍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4.03.20 11: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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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서점가의 목 좋은 곳을 차지하고 대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감성(new sensibility)’이 필요하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효율성과 ‘기술적-도구적 합리성’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1차원적 세계’에서 오히려 감성적 에로스(eros)의 세계가 요청된다는 것은 인간의 정서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인류의 문명사회는 ‘에로스의 억압’에서 출발했다. 즐거움, 쾌락, 자유 등과 같은 에로스는 문명건설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는 ‘근친상간의 금지’와 같은 터부(taboo)를 설정하고 노동을 통한 생존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도록 했다. 노동은 하지 않고 사랑과 쾌락만 즐긴다면 문명사회는 건설되지 않았을 터이고 먹고 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힘겨운 노동과 에로스의 억압을 통한 문명사회의 건설은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회의를 낳게 했으며 ‘피로사회’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힐링’을 찾아 떠나게 했고 ‘에로스의 귀환’을 꿈꾸게 했다.
허버트 마르쿠제는 ‘에로스와 문명’에서 ‘억압 없는 문명은 가능한 것인가?’를 진단하면서 인류의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인간은 문명사회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에로스의 인력(引力)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다는 두 시각을 조명한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만 관심을 갖는 현대사회는 효율성과 ‘기술적-도구적 합리성’을 강조하면서 자본의 지속적 축적과 교환가치의 창출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은 달성하려는 목표가 정당한지 부당한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또 그 과정에서 타자(他者)를 소외시키는지 자신이 소외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효율적인 것만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비판적-부정적 태도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무시되거나 배척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풍조는 인간의 내면세계에까지 스며들어 개인의 욕망과 도덕관까지 지배한다. 마르쿠제의 눈에 비치기에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1차원적 세계’가 비판적-부정적 사유체계인 ‘2차원적 세계’를 몰아내고 참된 의식인 양 행세하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유토피아의 도래를 고대했는지 모른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지만 그럴수록 진정 나는 행복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과 인문학은 이런 질문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의 산물이다. 생산성과 효용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무용해 보이는 예술의 세계는 허황된 것이며 인문학은 돈벌이도 안 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이니 플라톤도 ‘시인 추방론’을 들먹였는지 모른다. 감상적인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니는 시인을 추방함으로써 강력한 도시국가를 형성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이웃 국가보다 비교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청년들에게 값싼 눈물을 흘리게 하는 무용한 존재들이니 추방당해야 할 존재들이다. 그러나 힘과 노동과 공격이 주를 이루는 타나토스(thnatos)의 세계는 에로스의 세계 없이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건설한 문명사회는 끝없는 노동을 강요해 왔으나 인간들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떠돌이처럼 에로스의 근처를 서성거렸다. 이 무용해 보이는 떠돌이들이 예술가들이며 인문학자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비판적으로 창조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이들은 현대사회에서 유용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회의적인 눈초리를 보낸다. 이들은 유목민(nomad)처럼 기존 사회의 질서와 제도와 사람들의 정착화를 위협한다. 떠돌이의 자유는 안에서만 보면 기존 질서를 파괴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밖에서 들여다보면 기존 질서가 갖고 있는 모순의 현현(顯現)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다. 그 떠돌이의 존재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성숙한 사회의 바로미터가 된다. 떠돌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 사회는 열린사회로 나아가기 어렵다. 떠돌이는 새로운 자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언자이고 제도적 자유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치료자이기도 하다.
이런 떠돌이들을 대기업에서 받아들이겠다고 하고 이들의 생각이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점에서 우리사회는 새로운 인간형의 출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무용한 것이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다양한 떠돌이들의 출몰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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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과 2014-04-02 15:50:36
ㅌ1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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