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만 일어나라.”
왕순의 고함에도 진호는 몸만 한 번 뒤척일 뿐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자식이 족보가 물구나무 섰나? 어른도 못 알아보고 어디서 개기는거야!”
왕순은 쪽마루 위로 성큼 올라서서 진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불이야! 불!”
고함소리에 진호는 눈도 채 뜨지 않은 상태로 벌떡 일어나 왕순의 손을 뿌리치고 방안을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디야, 어디?”
장님처럼 손을 허우적거리며 난리를 치면서도 진호의 감긴 눈을 좀처럼 뜨이질 않았다.
“요 녀석. 어디 맛좀 봐라.”
한심한 듯 지켜보던 왕순이 수도꼭지에서 물을 한 바가지 받아 진호의 머리통을 밖으로 잡아끌고 퍼부었다.
“아푸푸..”
난데없는 물세례에 놀란 진호는 눈을 뜨고 맨발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문밖에 나가서야 비로소 정신이 든 그는 불도 연기도 없는 것이 이상한지 조심스럽게 가게 안을 들여다 보았다. 천연덕스럽게 휘파람을 불며 바닥을 쓸고 있는 왕순의 모습이 보였다.
“형, 어떻게 된거야?”
진호는 아직도 근심을 떨어버리지 못한 듯 목만 안쪽으로 쓱 들이민 채 물었다.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되냐?”
“불은 다 껐어?”
진호는 눈을 비비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 녀석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기는.. 야 개뼉다구 같은 잠꼬대 그만 하고 이거나 빨아다가 닦아 임마.”
왕순은 어리둥절한 채 머리를 긁적이고 서 있는 진호를 한 대 쥐어박으며 대걸레를 내밀었다.
잠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대며 걸레질을 시작하는 진호를 바라보며 왕순은 의자에 걸터앉아 장부를 펴들었다.
10월 15일. 오늘은 곗날이었다.
왕순은 금고를 열고 만원짜리 한 다발을 꺼내들고 세기 시작했다.
52만원.
남의 밑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라는 유혹에 계를 시작하긴 했지만 한 달 동안 헐레벌떡 뛰어다닌 댓가를 갖다 바칠 때마다 아까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세 번째로 곗돈을 타서 가게를 낸 덕을 봤지만 앞으로 열 번을 이렇게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말이 사업이지 왕순의 생활은 그야말로 밑바닥 생활을 간신히 벗어난 정도에 불과했다.
달마다 곗돈 50만원을 내고 인건비 40여만원, 게다가 월세까지 지불하고나면 끼니는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왕순은 뻑하면 내쫓기는 남의집살이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참을 생각이었다.
‘그래, 1년만 더 참자. 그러면 나도 버젓한 사업가 명함을 내밀 날이 있겠지.’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