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당 창당의 정치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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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신당 창당의 정치사적 의미
  • 전만수(경제학박사․서울시 은평구)
  • 승인 2014.04.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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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일 기습적인 ‘안철수 김한길의 제3지대 신당창당’ 발표 이래 지상에서 많은 논평들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안철수 위원장의 언행에 부정적인 시각이 대세였다. “정치공학적 연대는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오던 안철수 위원장의 말과 다른 정치적 결정에 쏟아진 실망 매물이다. 강원택 교수(서울대)는 3년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즈음에 불기 시작한 “안철수 바람은 기존 정당체제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과 거부를 뜻하는 것으로 안철수 바람은 지역주의와 이념 대결에 의존한 거대정당들의 기득권을 허물고 유권자의 요구와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좀 더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정당정치를 이뤄보자는 소망을 담고 있었다.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존 정당들과 차별화된 새로운 정당에 대한 여망이 안철수라는 인물을 통해 표출됐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안의원이 독자적 대안세력 결성의 목표를 접고 기존 정치 세력과 힘을 합치기로 한 결정은 그에게 걸었던 새 정치의 여망을 제대로 구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며 ‘새정치는 죽었다’라고 극단적으로 진단한다. 두 사람의 통합 발표직후(2월7일) 실시한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결과를 보더라도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 대하여 ‘새 정치가 아니다’ 49%, 새 정치로 본다 32% 로 부정적 시각의 우세다. 김병준(전 노무현 대통령정책수석)교수는 칼럼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에 의한 ‘새정치’는 없다. 이제 이기고 지고에 관계없는 사람들이 나설 때다.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모이는 대로 모여 변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신당의 실패가, 그리고 정치의 실패가 우리 모두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라며 통합에 대한 원론적 비판을 넘어 기성 정치인이 되버린 안철수 의원과 신당을 싸잡아 실패로 규정한다. 새 정치의 실현을 염원하며 안철수 의원이 백마 탄 왕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했던 필자의 실망 또한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 없이 비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초 정치라는 괴물이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향만을 쫓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정치는 먼 훗날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교육과 달리 당장의 손익계산서가 중요하다. 목전에 닥친 6.4선거는 2년 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견인한다. 정치판에는 의례 레토릭이 난무하는 게 자연스럽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착함은 어리석음이다. 이미 ‘새 정치’라는 용어 또한 낡은 용어가 된지 오래다. 안철수 위원장에게 닥친 조직, 인재영입, 지지율 하락의 3중고(重苦)는 견디기 힘든 정치적 위기였을 게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느꼈을 위기적 배반의 씨앗을 뿌린 것은 유권자들이다. 더러운 정치판에 (유권자인)내 발을 담그기는 싫으니 안철수 등을 떠밀어 놓고 모르쇠한 게 유권자다. 그리고는 기성 정치인에게 정치를 더 이상 못 맡기겠다고 하며 본인(김병준)은 나서지도 않으면서 일반 유권자의 (정치판에)나섬으로 해결하자고 선동(?)한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항상 전문가가 있는 법이다. 누구나 정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치 않다. 정치는 결코 도덕군자들의 영역이 아니다. 정치는 정치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정치는 어차피 차선의 선(善)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면서도 정치는 국가를 구성하는 상부구조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유권자는 외면할 권리도 없다. 애증(愛憎)이 동거하는 영역이다. 정치가 갖는 2중성이다.
정치는 정치라는 프리즘이 비추는 각양각색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게 정의된다. 그래도 정치를 두 가지 단어로 설명하라면 필자는 정치를 ‘현실(現實)’과 ‘생물(生物)’로 압축 하겠다. 정치는 변화와 개혁을 슬로건으로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이상적 미래를 지향하지만 그러나 정치적 이상은 언제나 현재의 벽을 넘지 못한다. 현실이라는 거시적 곽 속에서 아메바처럼 다양한 가변성의 조합으로 변화한다. 정치는 선(善)을 향해 가지만 갈지(之)자 행보를 한다. 때로는 진화하고 더러는 퇴보하고 잠복한다. 그게 정치다.
현재적 진행형인 야권의 통합 시도를 말 바꾸기, 기회주의라고 비판만하는 것은 성급하고 무책임한 처사다. 국가 차원에서 희망적 한국정치 지형을 조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현실 상황에 항상 적응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정치행위를 성실히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차하게 설명은 하지 않았어도 행간에 반성의 공감대가 깔려 있슴도 눈에 띈다. 따라서 지금 진행 중인 새로운 모색은 비판적 시각보다는 망각했던 야당의 정체성을 되찾고 이 나라의 건전한 의회정치를 복원하려는 야권의 진통으로 보는 슬기와 여유있는 통 큰 아량이 더 필요한 대목이다.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정치가 바로서고 나라가 건강하다. 대안적 정치 세력이 있어야 정부 여당은 긴장의 고삐를 조이며 민의에 충실히 임하며 비판과 경쟁의 건설적인 여야 구도를 형성해 나간다. 통합 전 민주당은 대안세력으로서 유권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안철수 바람의 태동에 민주당의 직무유기도 한몫 거들었다. 다행히 안철수의 새 정치 수혈로 대안세력으로 거듭 날 희망의 끈을 잡았다. 정당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건을 통해서 정치인도 부침한다. 김한길 위원장은 본인이 내세웠던 ‘야권의 재구성’을 성사시켜 새로운 정치인으로의 테이크업 할 기회를 얻었다. 안철수 위원장은 분명 큰 부상(負傷)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재산의 반을 그것도 2000억대에 달하는 재산을 사회에 내놓은 한국판 기부왕이다. 결코 정치적 수지 계산만으로는 단순 평가할 수 없는 내공을 가지고 있다. 이번 과정을 통해 본인이 호랑이 띠라며 “통합신당이 훨씬 위험하고 어려운 고난의 길임을 알지만 정치생명을 걸고 결단한 것”이라고 권력의지에 대한 결연함도 보여주었다. 호랑이가 될지 사슴이 될지는 2017년에 가봐야 판가름이 날게다. 그러나 실망 속에 가려진 유권자들의 실낱같은 희망에 부응하여 새 정치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정치적 유연성과 의연함을 배워간다면 큰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두 사람이 주도한 이번 거사가 한국정치사에 있었던 성공 사례인 ‘90년 ’3당합당’이나 ‘97년 ’DJP연합‘에 비견 될 성공한 정치사건으로 기록 되를 바란다. 한국정치사의 의미 있는 성숙기회가 될 수 있도록 두 사람의 합의대로 2017년 정권교체 목표를 향한 수권 대안세력으로 거듭 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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