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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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몰랐던 행복
  • 윤여문 <청운대학교 교수·카럼의원>
  • 승인 2015.02.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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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있다가 문득 아파트 베란다 밖을 보니 새하얗게 눈이 내린다. 늦은 오후부터 산발적으로 날리던 눈이 어두워지니 그 양이 제법이다. 외로이 서있는 가로등 불빛에 비춰진 눈의 양은 가히 폭설에 가까울 정도이다. 재빨리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보니 수도권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내일 출장이 예정되어 있는 나는 순간 긴장한다. 이 정도의 눈이면 내일 아침의 험난한 출근길이 쉽게 짐작되기 때문이다. 아침 일곱 시에 집을 나와서 무려 250Km를 운전해야 한다. 더군다나 쉽게 잠을 잘 수 없는 가벼운 불면증을 앓고 있는 나는 아마도 새벽 세시쯤에나 잠자리에 들 것이니, 오늘밤은 많아봐야 서너 시간 남짓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내 차는 십년 동안 20만Km를 주행했다. 차량의 많은 부분들을 교체했거나 조만간 교체가 예정된 낡은 차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는 내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눈이 쌓여 빙판이 된 미끄러운 도로를, 낡은 자동차로 매우 긴 거리를 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저녁을 물리고 거실 창문으로 폭설을 내다보며 한 동안 그렇게 내일의 스케줄을 걱정했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도로에는 손가락으로도 간단히 셀 수 있을 만큼의 자동차 불빛만이 보일뿐이다. “꽃봄아, 아빠랑 나가서 눈사람 만들까?” 소파에 드러누워 아내의 휴대폰으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일곱 살짜리 딸아이는 ‘이게 웬 횡재냐’며 평소보다 두 옥타브는 높은 목소리로 “응!”하며 벌떡 일어선다.

거의 두 시간 동안 대략 세 개의 크고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나뭇가지를 꺾어 눈, 코, 입을 만든 딸아이는 자신의 모자와 장갑을 벗어 눈사람에게 양보한다. 아이는 순식간에 불어난 눈밭을 침대삼아 벌렁 드러누워 팔, 다리를 아래위로 휘젓는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이 했던 그것처럼 말이다. 나는 딸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순간 무척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십 년 전 동네 어귀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신나게 뛰어 놀았던 내 촌스러운 유년 모습이 지금 딸아이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고단한 하루가 될 내일 출장 걱정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최근 몇 년 동안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또 다른 아이디어 낳고, 그 아이디어는 보다 진보된 기술을 우리 삶에 가져오는 방식이다. 우리에게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이러한 디지털 진행과정의 주기는 갈수록 단축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이미 도래 했고, 나는 현재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리며 살고 있다. 전화기로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고, 시속 300km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페이스북 등의 SNS로 자신의 일상생활을 전 세계의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요즈음이다. 좀 더 나아가, 주변 상황을 감지하여 속도와 방향을 제어해 주는 자동차, 인간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여 손상된 장기를 치료해주는 신약, 원하는 모양과 재료를 이용해 물체를 만드는 3D 프린팅 등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많은 신기술들이 이미 시판되고 있거나 현재 개발 중이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 덕분에 세상은 이전과 비교하여 훨씬 편해졌고 삶은 더욱 윤택해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하나의 원초적인 질문에 봉착했다. ‘나는 행복한가?’, 또는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행복한가?’ 나는 ‘최신식 디지털 제품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는 결론에 어렴풋 도달한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혁신적인 테크놀로지를 국민 대부분이 영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매일 슬픔을 넘어 절망적인 뉴스들이 즐비하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무기력하고 존경받아야 할 노인들은 소외되며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은 방치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혹은 어떻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행복은 먼 곳에 있거나 또는 먼 미래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렇게도 찾으려던 그 행복은 어쩌면 지금 당장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아주 소박한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령, 아내의 순박한 미소 속이나, 지난여름 아들과 걸었던 비오는 날의 제주도 올레길 속에, 그리고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마셨던 맥주 잔 속이나 학과 학생들과 나누었던 실없는 농담 속에 내가 그동안 찾지 못했던 행복이 숨어 있었던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오늘 딸아이와 눈사람을 만들며 느꼈던 벅찬 행복과 감동을 나는 매일 갖고 있었지만, 우매한 나는 그 수많았던 행복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쳐 버렸던 것이다. 이따가 청바지 주머니 속을 한 번 뒤져봐야겠다. 혹시, 거기에도 내가 찾고 있었던 행복이 움츠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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