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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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는 사람이 없다
  • 권기복<홍주중 교감․칼럼위원>
  • 승인 2015.02.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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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저녁 모임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
“설날이 얼마 안 남았죠?” 아마 기사님은 친절을 위한 의례적인 말붙임이었을 것이다.
“예. 꼭 열흘 남았네요.” 나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은 드문드문이지만, 쇼윈도 안의 풍경은 제법 북적거렸다.
“요즘은 설날이라야 별 재미가 없어요. 저는 고향집에 명절날이라고 찾아가봐야 아무도 없어요. 10여 년 전만 하여도 명절 때에는 온 마을이 북적거렸는데.”
“이젠 어느 시골이든 다 마찬가지예요.” 나도 일 없는 마음에 맞장구를 쳤다.
“돈 좀 있는 친구들은 해외로 가족여행을 간다고 하고, 어쩌다가 고향에 들린 친구들도 아예 읍내에서 만나자고 합디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윷놀이도 하고, 푸짐했는데 옛말이 되고 말았어요.”
“예.”
“저희가 학교 다닐 때만 하여도 우리 마을에 또래 애들이 열댓 명은 되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소나 개, 돼지 울음소리는 요란한데 애새끼 울음소리는 들을 수가 없어요. 우리 마을만 하여도 엄마, 아빠랑 살면서 초등학교 다니는 애는 단 한 명도 없고,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떠 맡긴 애들만 두세 명 있을 뿐이죠.”
필자의 고향 모습과 기사의 말이 창문 밖으로 중첩되어 연상되는 동안 택시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설 때까지 많은 추억과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10여 년 전까지만 하여도 명절 가까이만 되면, 전국 각지에 퍼져 살고 있는 고향 친구들과 전화를 하곤 했었다. 고향에서 만나자던 그 설레임에 몇 밤을 보내고, 만남 자리에서는 밤새는 줄을 모르곤 했다. 또 다시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다음 명절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고향이란 조상님의 산소를 급급하게 다녀오는 일련의 연례행사가 되었을 뿐이다.
성묫길에나마 고향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산산이 깨어지기 일쑤였다. 바빠서 일주일 전에 다녀갔다는 것이다. 그 바쁘다는 사정에는 헛웃음이 나올 때도 많았다. 명절 연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과 해외로 골프여행을 갔다는 내용 등이었기 때문이다. 나무라기라도 할양이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둘이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에 한도가 있고, 무슨 놀이를 하기도 마땅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현대 사회의 산업화, 정보화는 사람들을 도시로 도시로만 향하게 하였다. 한 세대 전에 1000여 명의 학생들이 버글거리던 시골 학교들은 폐교 당하거나 5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로 전락하였고, 이젠 읍내 학교까지 대부분이 줄어들고 있다. 세계 최저의 낮은 출산율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도시 집중화 현상은 시골을 고사(枯死)시키고 있다.
도시는 인구과밀화로 주택, 교통, 교육, 환경,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를 안고 있고, 시골은 인구급감으로 교육, 문화, 고독(외로움)과 노인문제, 일손부족, 마을 붕괴 등의 심각한 소멸 문제를 떠안고 있다.
그럼 도농(都農)간 불균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경제적으로 시골에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신뢰감을 형성시켜 주어야 한다. 반세기 전에는 쌀 100가마니 값이면, 서울에서 큰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현재 쌀값으로 하면, 1500만원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1500만원을 들고, 서울 가서 집장만을 하겠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하겠는가?
둘째, 문화적인 접촉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정책의 배려가 꼭 필요하다. 현재 노인 사망 요인 중에 외로움에 지친 비관 자살의 비중이 상당한 수치이다. 필자는 단순한 사망 조사 비율보다 감춰진 비율이 더 많다고 본다. 자연사망 시기가 가까웠으니 후손들 부끄럽지 않게 하고, 법적인 시비 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사회적 암묵 때문이다. 말로는 시골이 좋다고 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가 시골에 살기를 바라는가?
지금보다 시골의 인구가 10배 정도 많아져도 환경문제는 제로에 가까울 수 있다. 지구의 자연정화 능력을 벗어나지 않을뿐더러 도시의 모든 환경 요소가 해소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음식 찌꺼기는 가축 먹이로 하고, 인분은 논밭에 거름으로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고뇌하는 마음으로 시골을 살려보자. 사람 사는 시골,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는 시골, 남녀노소 손뼉치고 재미있게 노래하는 시골, 정겨움 가득한 고향이 될 수 있는 시골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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