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히 있어!"
하고 돌연 사내들이 위협할 때는 이미 엎어진 물이다.
비좁은 자동차 안에서 억센 두 사내를 당해낼 여고생은 거의 없지 않겠는가. 조수석의 좌석이 뒤로 넘어지면서 쓰러진 여고생은 이미 두 사내한테 바쳐진 제물이나 다름없다. 그렇거나 그 비슷한 방법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인생의 그늘 속에서 울고 있는 여고생이 없어질 때에 비로소 이 사회는 인간들의 세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이고 보면 신중과 호동의 K여고 앞 기다림이 결코 평상적인 것일 수만은 없었다. 니들 여기서 뭐해, 하거나 니네들 불량배 같은데 당장 경찰서로 가자,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다행이 그와 같은 불행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아 주었다.
어느 때 쯤.
갑자기 호동이 낮게 소리쳤다.
"야!"
잠시 긴장이 풀려있던 신중은 깜짝 놀라며 마구 소리쳤다.
"엉?"
"저길 봐."
호동은 턱으로 교문 쪽을 넌즈시 가리켰다. 신중이의 시선이 쪼르르 그 쪽으로 달려갔다. 순간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분명했다.
수연과 보자였다. 신중이의 가슴이 두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쿵닥쿵닥, 쿵딱딱, 따라락딱 쿵닥딱, 쿵따라락딱 심장 뛰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도 분명히 들려오며 손발이 떨렸다.
역시 호동이는 호동이다.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행동했다. 막 운동을 끝낸 다음 혹은 시작 직전처럼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런 다음 목숨 내놓고 투우 경기장에 들어가는 마드리드의 후랑코처럼 신중이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가자."
하고 장엄하게 선언했다.
"가아?"
오금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신중이다.
"그래, 가자."
"아, 알았어……갈께……"
"떨지 말고."
"그으래, 아알았어어……"
소리 없는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예포가 화약도 없는데 진동하며 허공을 향해 발사되었다. 국빈에 대한 예우나 의전 이상이었다. 거기 맞추어 나팔도 없는 팡파레가 일대에 길게 울려 퍼져 나갔다.
300원짜리 팡파레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긴 나팔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 없는 멜로디였다. 거기에 맞추어 우렁찬 함성이나 구령, 군화 발소리가 아닌 운동화 발소리가 땅바닥에 박차기 시작했다.
"저어……"
다가오는 두 명의 여학생 앞에 태산처럼 버티고 서있는 호동이의 입이 웅장하게 열렸다.
"어머!"
"뭐예요?"
수연이와 보자는 합창하듯 급히 물으며 호동이를 노려보았다.
"잠깐 실례 좀 할까요?"
씩씩했다 전혀 굴함이 없는 싸나이 호동이의 어른 같은 목소리에 수연은 잠깐 기가 꺾이는 표정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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