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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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나무를 심자
  •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 승인 2015.04.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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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인 “옛 동산에 올라”의 가사 중에 “지팡이 도루 집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 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하는구나”가 생각난다. 해마다 봄이 되면 깊은 산 속 거목은 물론 양지 바른 담장 밑에서 돋아나는 꽃 잔디의 연약해 보이는 새싹에서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계절이다.

어느 분의 말대로 “1년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곡식을 심고 10년의 결과를 맺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100년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인물을 심어라”고 하며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여 인재(人材)라고 한다. 또한 어떤 철학자도 우리가 일생동안 4가지 심어야 할 것으로 첫째, 산에는 나무를 둘째, 사회에는 인물을 셋째, 정신에는 이상을 넷째, 생활에는 미래를 심으라고 했다. 여기에 하나를 추가한다면 가슴에는 “희망의 나무를 심자”라고 말하고 싶다.

회고해보면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산들은 그야말로 민둥산으로 여름철이면 홍수가 나서 산사태의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것은 시급한 민생고 해결 중에 밥을 하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때려면 이산 저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난방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연탄이 나와 난방의 유일한 방편이었으나 여기에서 발생되는 가스 중독으로 아깝게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석유와 전기보일러에서 그리고 태양광을 이용한 난방으로 편리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온돌방에서의 아랫목은 아버지의 지정된 자리요, 직장에서 늦게 돌아오는 자식들에게 따스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밥그릇을 이불로 덮어두던 어머니들의 사랑이 아련히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보일러 시설처럼 온 방이 골고루 따뜻함을 유지하는 평등사회가 됐지만 이로 인해 일상생활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염려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문화적인 혜택으로 외부 환경이 편리해졌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모두가 힘들고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가슴에 희망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지금 당장 살아가기 힘든데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라고 반문을 하겠지만 지난날 가난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 온 선조들에 비하면 오늘 우리는 풍족한 의식주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다보면 웃을 일이 생긴다’는 말과 같이 우리는 희망의 닻을 내려서는 안 된다. 희망의 나무에서는 춘하추동 4계절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에 결코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희망의 불씨는 비록 작고 연약해 보여도 주위를 밝게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의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하듯이 인생은 가까이는 현미경처럼 크게 보고 멀리는 망원경처럼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소원하는 행복은 유전이 50%이고 노력이 40%이며 환경과 조건은 단지 10% 뿐이라고 한다. 썩은 거름 속에서 한 그루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듯이 인생도 고난과 고뇌 속에서 희망의 꽃이 피는 삶이 아닌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넘어지지 않듯이 인생살이도 거센 풍랑과 풍상(風霜)을 이겨낸 뒤에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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