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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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참새
  • 장미화<장애인종합복지관·주민기자>
  • 승인 2015.06.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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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거실에 비치는 아침햇살과 함께 전봇대와 전깃줄, 처마 밑에 앉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세레나데처럼 단잠을 깨운다. 주로 참새와 까치, 이름 모를 노랑깃털을 가진 새까지 각양각색의 새들이 모여든다. 도시민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정겨운 고향의 풍경이지만 울 어머니에겐 봄부터 가을까지 전쟁을 치러야하는 삶의 현장이다. 작년까지 어머니는 밭에 두부콩, 서리태, 참깨, 들깨, 수수, 고구마 등을 모종을 하지 않고 직접 심으셨다. 그러다 보니 싹이 나올 때까지 밭에 나가셔서 새를 쫓고 싹을 틔워냈다.

어떤 해에는 삼분의 일이 새의 먹이가 되기도 했다. 그나마 종일 햇볕아래서 지켜낸 작물들도 가을이 되어 영글기 까지 어머니는 또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 서신다. 매년 혼자가 아닌 아이들인 헌 옷을 입은 어린 허수아비, 어머니의 옷을 다소곳이 입은 어르신 허수아비, 고장 나 못 쓰는 각양각색의 우산, 반짝반짝 빛나는 은박지 과자 봉지 등 1000여 평의 밭에 화려한 옷을 입은 허수아비들이 어머니와 함께 한다. 새들과의 전쟁이 끝날 무렵 이제 고라니와 청설모로부터 옥수수, 고구마를 지켜내셔야 한다. 어떤 날은 이른 아침에 밭에 가보면 고라니가 익지도 않은 옥수숫대를 다 쓰러트려 제대로 크질 못하게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참새와 들짐승과의 기나긴 전쟁을 무사히 마치면 가족과 친척들, 이웃과 나눠먹을 만큼의 농작물을 거둬들인다.

올해는 울 어머니가 새들과의 전쟁에서 조금의 지혜와 여유를 찾으신듯하다. 절기별로 모종을 부으신다. 도라지는 이른 봄 직접 밭에 씨를 뿌려 까만 그늘 막을 씌워 참새들에게서 지켜내었고 두부콩과 옥수수, 고구마순은 일찌감치 모종을 부어 엊그제 단비가 오던 날 심었다. 들깨도 모종을 부어 싹이 나기 시작했다며 흐뭇해하신다. 오늘은 서리태 모종을 부으셨다. 이웃들의 지혜를 모아 참새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빼앗기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을 배웠다며 행복하게 모판작업을 하신다. 올해는 비가 오지 않아 가뭄으로 애를 태우며 비가 올 때마다 밭작물을 심고 계신다. 적당한 비와 햇빛,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소중한 생명의 양식을 지켜내기 위해 자연과 참새, 들짐승들과 고군분투하시는 어머니. 올해는 어머니가 참새와의 싸움에서 이겼으면 한다. 그래서 새소리가 더 정겹고 즐거운 음악소리로 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새들과 어머니가 더 친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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