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동이와 신중이도 형식적으로 놀라는 척 했다. 해석은 가능한 일이다. 교통지옥으로 곧 기네스북에 오를 대한민국의 88수도 서울이다. 웬만큼 부지런 떨지 않고서 약속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서둘러도 불가능할 때가 자주 있다. 전세집에 살아도 자가용은 있어야 된다는 허영심의 팽배로 늘어난 초보운전자들의 시내질주, 강력 단속에도 좀처럼 고개숙일 줄 모르는 음주운전, 대형차들의 난폭운전, 거기다 남편몰래 캬바레에 들리거나 심지어 사우나에 가서 근육질의 사내한테 전신맛사지와 함께 별미의 군것질까지 하다 보니 시간도 늦고 몸도 나른한데 빨리 집에 가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승용차를 몰아대는 여성 제비족들, 유부남한테 적당히 서비스해 주고 얻어 탄 고급 승용차들로 느긋하게 몰아대면서 다음 번에는 어떻게 어디를 서비스해 주면 두둑히 뜯어낼 수 있을까 혹은 오늘 잔뜩 피곤한데 진짜 애인이 또 서비스를 요구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신호등의 색깔까지 혼돈하는 가짜 여대생 등등.
서울의 교통난은 지옥을 방불케 할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다.
그런 타국에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는 것은 말도 안됐고, 더구나 그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밤잠 안자고 어제 밤부터 집을 나섰다면 또 몰라도 경탄으로 금치 못할 일이다.
그래서 특히 수연과 보자가 놀란 게 분명했다.
“어떻게 된 거죠?”
항상 그런식인 호동이 슬슬 다가가며 태연하게 물었다.
“뭐가요?”
수연은 니네들은 또 웬일이지, 시간 보다 일찍 나타나게, 하는듯이 되물었다.
“아직 시간도 안됐는데……”
“그러는 댁들은요?”
보자도 그렇게 한 마디 거들며 신중이 쪽을 바라보았다. 신중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연의 일거일동만 주시할 결심인 듯 했다.
“우린 남자 아닌가요.”
“남자?”
“뜻 깊은 약속인데 어찌 소홀히 할 수가, 안그래요?”
호동이 먼저 싱긋 웃자 수연과 보자도 미소지었다. 신중이 혼자서만 바싹 긴장된 표정으로 미소가 그려진 수연의 앵두 같은 입술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호동이 분위기를 일신시키려는 듯이 넙죽 한 마디 했다.
“우리가 먼저 와서 기다리려 했는데 이렇게 앞서 와서 기다려 주다니 영광이군요.”
“어머머!”
곧 죽어도 존심상하는 말은 묵과하지 못하는 수연이다.
“누가 일부러 그런 줄 알아요? 그건 착각인 줄 알아요.”
“그럼 아닌가요?”
“오다 보니 길이 안막혀서 일찍 온거 뿐이라구요. 남자보다 먼저와서 기다려 주는 여자도 세상에 있는 줄 알았다면 꿈 깨요.”
그쯤 해서 호동이 설전을 마무리 지으려 할 때 보자가 끼어들었다. 몸집이나 느낌 그대로 역시 마음씨가 후더분했다.
“너무 그러지 마, 수연아. 우리가 다투려고 왔니?”
덕분에 네 사람은 각각 서거나 앉아서 오줌누는 짝끼리 나란히해서 마주앉았다.
아직 새초롬한 수연의 표정과 보자의 얼굴이 대조를 이루었고 넉살 좋은 호동과 소심한데 그만 사랑에 빠져 안정을 찾지 못하는 신중의 표정은 더욱 대조적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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