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그 성장과정을 통해 어느 때까지는 여자가 모든 면에서 발달이 빠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성숙하다는 것인데, 육체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남자를 단연 앞지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건 아마도 결혼해서 한 몸 한 마음이 되기 전까지는 여자가 그 몸의 오묘한 진리처럼 셈세하고 요상하기 때문에 비롯된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수연이든 보자든 여자란 나이가 더해지면서 몸부터 달라지게 마련이다. 여고생들이 나이도 같은데 남학생들에 비해 누나 같은, 더 나아가서 모성애까지 느끼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막말로 표현하자면 홀랑 벗고 대결하면 누나도 모성애도 가당치 안은데 겉으로는 윗사람인 척 하게 만드는 것이 사람들의 습성인지도 모른다.
수연과 신중의 사이야 물론 누나가 사실이고 또 모성애를 느끼는 수연이 당연하다. 신중이 제아무리 고등학생만큼 성숙했어도 세 살이나 아래가 아닌가.
기막히게 고등학생으로 행세한다고 해도 그렇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역시 어리다. 백번 죽었다 다시 깨어난다 해도 호동이처럼 수연이 한테 탁 털어놓고,
“같은 또래인데 공연히 어색하게 존댓말 하지 말고 아예 터놓고 지내도록 합시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역시 신중이다.
뜻밖의 횡재수가 토정비결에 나와 있었던가. 신중이 도저히 하지 못할 그 말을 수연이 편에서 불쑥 꺼내기 시작했다.
“한 가지 제안할게 있는데....”
수연이 잠깐 말끝을 흐렸다.
“뭔데요?”
“혹시 어딘가 매우 어색한 분위기 같은 거 느끼지 않아요?”
“무슨.....”
신중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조바심이 앞섰다. 수연이 신중이가 자신과 상대하기에 어울리지 않고 어색한 분위기라고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해서 였다.
“우리 따지고 보면 둘 다 똑같은 청소년이에요.”
“네에?”
신중은 잠깐 놀라며 수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른이나 되는 것처럼 서로들 존칭어를 쓰니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에요. 안 그래요?”
“아아!”
신중은 짤막하게 탄성을 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몸 역시 간절히 원하던 바이올시다. 하고 싶어져 튀어 나온 탄성이었다.
수연의 감동 어린 말이 잠깐 사이를 두고 계속되었다.
“그래선데요..... 우리 앞으로 친구로 대했으면 해요.”
“친구!”
생각해 보기도 전에 황홀해지는 기분이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가능만 하다면 수연이 엉덩이를 살짝 꼬집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재빨리 몸을 추스르고 가다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지금이 기회야, 이런 기회는 앞으로 영원이 와주지 않을 거야.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과감하게 대시하는 용기가 필요해.
이건 옥황상제와 용왕, 그리고 염라대왕의 원탁 삼자회담에서 가결하여 내려준 기상천외의 기회란 말야.
그는 이런 생각과 함께 어깨를 쫘악 펴면서 가슴을 쓰윽 내밀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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