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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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
  •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 승인 2016.04.0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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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15)
▲ 차운(次韻), 70×47.5cm, 한지에 수묵담채, 2015

삶에 대한 유교적 인생관은 오복(五福)사상에 잘 드러나 있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 그것이다. 동서고금. 종교의 다름과 무관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으로서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모두를 충족시킨 인생을 살다간 이가 역사상 몇이나 있었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동방의 의인으로 일컬었던 욥도 완벽했던 행복한 삶이 어느 날 송두리째 깨지고 파멸의 자리로 내몰렸던 것처럼, 그것은 신의 영역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무녀, 시빌(Sybil)의 역설처럼 인간의 욕망은 끝내 불행을 자초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인류의 선각자들은 여기에 수많은 주석(註釋)을 두고 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서 우리가 날아갑니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릅니다.” 성서의 시편과 바울 서신에 있다.
공자의 제자 안희는 뒤주에 쌀이 항상 비어 있어도 자신의 빈곤한 처지를 비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오히려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청빈한 삶으로 성인(聖人)의 도(道)를 실현한다. 안빈낙도 사상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경지, 일상의 평범하고 아주 작은 행복에 감사하는 무욕의 삶이기도 하다.
낙엽진 가을 숲의 텅 빈 고요, 소림 황엽(疎林 黃葉)의 맑은 마음과 같다. 취업이 힘들고 삶이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마치 운명론으로 몰아가는 작금의 ‘금수저, 흙수저’ 세태는 변형된 욕망의 오복사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덕망이 높아도 기회는 오지 않아, 이름이 전해진들 무슨 소용 있으리” 두보(杜甫)의 취시가(醉詩歌)처럼, 우리의 시인 손곡 이달(李達)은 평생을 비주류 아웃사이더 방외인(方外人)으로 살았으니 신분적 한계로 인한 분노와 허망함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컸으리라. 그러나 좌절 낙담하지 않고, 충담(沖淡)하고 침착(沈著)하며 고고(高古), 광달(曠達)한 시품(詩品)의 품격을 자신의 시문학 예술에 온전히 투영시켜 ‘궁극의 시학’을 완성한다.
 
차운하다 (次韻)
處困常歡若 처곤상환약 / 居貧每晏如 거빈매안여
東風寒食淚 동풍한식루 / 不覺滿衣裾 불각만의거
어려움에 있어도 늘 즐거운 것 같고 / 가난 속에 살면서도 언제나 편안하다
한식날 봄바람 맞으며 눈물 흘렸지만 / 옷자락 적시는 것도 몰랐어라
 
필자는 부족한 화의(畫意)를 시품(詩品)에 맞추려고 애썼다. 안빈낙도의 철학은 이달 시문학의 미학적 근거로서 조선의 적선, 성인의 실천적 삶이 참으로 아름다웠음을 입증하고 있다.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궁한 뒤에 시가 더 좋아진다는 시론의 역설은 안빈낙도의 그림자와 같다, 지난 4개월여의 연재를 끝내며 홍주신문과 독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끝>
 
 

 

 

 

글, 그림 오천 이환영
동양화가, 운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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