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북면 엄찬고택은 성삼문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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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북면 엄찬고택은 성삼문의 집이다?
  • 서용덕 기자
  • 승인 2016.05.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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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양식과 옛 문헌 통해 ‘성삼문 구택’추정
울산대 이종서 교수, 학술논문집 통해 주장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명인 성삼문의 외손 엄찬의 고택이라 전해지는 홍북면 노은리 ‘엄찬고택’이 성삼문의 구택이라는 학설이 제기돼 지역 사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이종서 교수는 한국건축역사학회가 지난 2월 발행한 학술논문집 ‘건축역사연구 제25권 제1호’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1996년 중요민속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된 ‘엄찬고택’이 조선전기의 건축으로서 본래 ‘성삼문 구택’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평면배치, 입면구조, 창호, 건축부재의 순으로 ‘엄찬고택’의 각 부분을 분석해 고택이 조선전기에 건축된 이후 변형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음을 분석하고, ‘성삼문 구택’과 관련된 조선시기의 문헌자료를 토대로 ‘엄찬고택’의 내력과 용도를 추정한 과정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노은리에 소재한 ‘엄찬고택’이 지난 1996년 중요민속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된 것은 이 고택이 본래 성삼문의 외후손인 엄찬의 집이었고, 여기에 성삼문의 신주를 잠시 안치했다는 주장에 의거한 것이다.

이 교수는 엄찬의 집이라는 주장에 대해 1672년 송시열이 작성한 ‘홍주노은동천봉선생신주기(洪州魯恩洞遷奉成先生神主記)’를 잘못 해석한 데에 비롯한 것으로 이 고택은 엄찬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이 지난 2014년 ‘엄찬고택’ 등을 정밀조사한 이후 발간한 ‘한국의 전통가옥 43’에 따르면 ‘엄 찬(1642-1713)이 성삼문의 8대 외외손(외손의 외손)임을 밝힐 수 있는 근거는 확보하였으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고택과 엄 찬이라는 인물을 연결할만한 자료나 문헌을 확인하지 못했다.’(277p)라며 엄찬과 관련이 없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엄찬고택’의 평면, 입면, 가구, 창호, 기둥과 보 등의 건축부재를 분석해 조선전지적인 양식과 조선후기적인 양식, 건축 시기에 선후가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분 등을 살펴보고, 익랑과 행랑의 중층구조와 조선전기의 전형적인 양식인 액자형 영쌍창의 흔적 등을 통해 이 고택이 조선전기에 건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송시열이 작성한 ‘홍주노은동천봉성선생신주기’에서 충청관찰사 민유중이 ‘들보와 도리는 원형을 유지하되 벽을 새롭게 하는 방식’으로 수리했다는 기록과 ‘엄찬고택’의 수리내역이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교수는 1744년에 작성된 ‘홍주성선생삼문유허비추기(洪州成先生三問遺墟碑追記)’에서 1690년에 세운 비석에 ‘성삼문의 집’이 아닌 ‘성삼문의 마을’이라고 새겼다는 기록에 주목했다. 성삼문유허비를 성삼문의 집 앞에 세웠다면 ‘성삼문의 집’이라고 새겼을 것이나 집에서 떨어져 있는 지점이어서 ‘성삼문의 마을’이라고 새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이 교수는 ‘엄찬고택’의 구조와 17세기부터 18세기의 각종 기록에 근거해 ‘성삼문 구택’일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엄찬고택’이 ‘성삼문 구택’임을 명확하게 드러낸 기록은 존재하지 않아 논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도 논문 말미에 ‘조선전기 양반 가옥의 보편적 유형을 염두에 두고 처음 시도한 작업인 만큼 원형 구조에 대한 판단이 사실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며 ‘성삼문 구택’이 아닐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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