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같은 추억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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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같은 추억에서 돌아오다
  • 윤여문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6.05.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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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쯤이 아니었던가 싶다. 합정동 로터리 부근, 지금은 없어진 파출소 건너편 독서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당시 나는 독서실에서 밤샘하며 공부한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그 시간에 전자기타를 구입할 요량으로 편의점에서 야간 점원으로 일했다. 정확히 두 달을 그렇게 일했고 난 꿈에 그리던 중고 전자기타를 가질 수 있었다. 편의점 일을 그만두고 독서실로 다시 돌아온 나는 예전부터 알았던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는데 그 친구들 사이에서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그녀는 밝은 얼굴과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의 생각이 비슷해서인지 동네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만났음에도 그녀와 빠르게 친해졌다. 간간히 독서실에서 만나는 사이에서 홍대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생각을 편지에 담아 보낼 정도의 사이로 발전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감정이 더해졌지만 그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기 힘들었다. 친구 관계 이상을 원하는 내 마음을 들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승낙이 아닌 거절일까 두려워서였다. 나는 고백해서 사이가 서먹해지기보다는 혼자 열병을 앓더라도 꾸준히 그녀를 만나는 것을 선택했다. 

다음해, 그녀는 꽤 괜찮은 대학의 좋은 학과에 입학했고 나는 지원한 학교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독서실을 함께 다녔던 예전만큼은 고사하고 몇 개월에 한 번씩 만날 수밖에 없는 소원한 관계가 되었으므로 내가 고백의 기회를 갖는 것은 더욱 멀어졌다. 군대에 입대해서도 편지와 엽서는 계속되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졸병시절 유일한 기쁨이었다. 내무반으로 배달되어온 편지를 조심스럽게 뜯어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나는 내가 고민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꿈꾸는 것 모두를 편지에 적었지만 그녀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지는 않았다.

서른살 즈음의 미국 유학 중 어느 날이었다. 부슬비 내리는 토요일 오전, 그녀로부터 소포 한 상자를 받았다. 나는 한껏 들뜬 기분으로 박스를 열었다. 담배 두 보루와 갖가지 한국 과자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일전에 보낸 나의 편지에서 미국의 어마어마한 담뱃값과 맛있는 한국 과자들을 언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룸메이트에게 기분 좋게 담배와 과자를 나누어 주다가 상자 맨 밑에 놓인 엽서를 발견했다. 불길한 마음으로 열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청첩장이었다. 나는 잠시 창백한 얼굴로 서성이다가 이내 뒤뜰 정원으로 나가 부슬비 속에서 담배를 피우며 눈물을 참았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피어올라왔다. 나는 왜 십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했던가. 그녀는 예정대로 결혼했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딸 둘을 낳았다. 나 역시 좋은 여자와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다.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어느 여름, 오랜만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뉴욕에 방문할 일이 있으니 시간이 괜찮다면 만나자는 것이었다.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수업을 듣던 평소와는 달리 그날은 베이지 면바지와 구두를 신었다. 약속시간에 맞추어 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 온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예전의 밝은 모습은 사라지고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온 주부의 지친 모습이 그 자리에 있었다. 모처럼의 외출을 준비한듯 한껏 치장한 장신구와 옷차림이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고 반가운 웃음도 잠깐이었다. 나는 그녀의 검은 얼굴과 나이에 맞지 않은 주름과 무거운 톤의 목소리에서 삶에 지친 일상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를 보내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십몇 년 전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합정동 독서실 휴게소에서 했던 밝고 쾌활한 농담들, 늦은 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보았던 철제 대문, 가끔씩 당혹스럽게 만드는 그녀의 까칠한 질문들, 그리고 수백 통의 편지에서 읽었던 익숙한 글씨체가 뉴욕의 버스 창문너머로 아른거렸다. 공연히 그녀를 만났다는 후회를 했다. 만나지 않았다면 예전의 좋은 모습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었는데. 터벅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초인종을 눌렀다. 아빠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챈 어린 아들이 거실 저쪽에서부터 쿵쾅거리며 아빠를 외치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섯 살이 채 안된 아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내 아들을 그 자리에서 꼬옥 껴안았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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