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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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5>
  • 한지윤
  • 승인 2016.06.23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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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드디어 소영이에게도 애인이란 존재가 생겨났다는 점이 아니겠는가.
이 청년은 유일호라는 대학생이었다. 지난 해의 일이었다. 소영이는 S대학교 1학년이던 유일호군과 오랜만에 해후하여 다방에 틀어박혀 여나문 시간이나 졸업 이후의 얘깃거리들을 되새기며 만난 적이 있었다.
유일호의 집은 부친이 사법서사를 하고 있는데 그는 언제나 학년 전체에서 수석을 해 왔었다.
그럼에도 그의 모습에서는 천재들만 모인다는 S대학교의 입학시험이라는 괴물과도 같은 압박감이라곤 전혀 느껴 볼 수 없이 활달했다.
그 날 그는 대학에 입학한 뒤 최초의 시험이 끝난 직후 곧 시내동쪽에 있는 벽촌으로 리포트 작성차 1박 2일 다녀 와야겠다고  소영이에게 말했었다.
“왜 하필이면 벽촌으로 가니?”
“찌들게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아.”
유일호는 진지한 말투로 얘기를 해 왔다.
“나도 비교적 검소한 생활을 해 왔지만 이 세상엔 나보다 훨씬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야.”
“그래. 알겠다.”
소영이에게 있어서 이러한 대답은 수긍하는 말투가 아니라 어딘가 한숨과 같은 것이었다. 소영이는 웬지 그저 한가하게 안일한 생각으로 학교에 다니며 생활하고 있는 자신에게서 일말의 부끄러움 같은 것을 그 순간 느꼈던 것이다.
“나도 대려가 주지 않을래? ”
“너 같은 앤 필요 없어. 네가 가야할 곳이 못될 것 같다.”
그 벽촌은 역에서 내려 버스로 두 시간 남짓, 그리고 또 15Km 남짓 도보로 걸어가야 하는, 최근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온 곳이었다.
“그 곳에서 일박하고 다음 날 돌아오는 거야.”
“일박이라도 좋으니까, 좀 따라가자, 응? 잠 잘 때 네 손발을 묶어 놓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네 어머님께 물어 봐라. 승낙이 떨어지면 함께 가기로 하고.”
아무튼 떠나기 전에 일차 전화 연락이라도 넣어 달라고 소영이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해 놓았는데 유일호는 그것을 지켜주었다.
소영이는 유일호에게 허락이 났다고 말해왔으나 실은 부모에겐 한마디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소영이가 상의를 한 사람은 할아버지 한 분 뿐이었다.
“우는 소리 하지 않겠지? 피곤하다든가, 발이 아프다든지 하는 불평 따윈 말하지 않을 수 있겠지? ”
“절대로 그러진 않겠어”
“그렇다면 갔다 오려무나.”
소영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 대신에 할아버지로부터 승낙을 받아냄으로써 정당화시켰다.
소영이로서는 유일호와 단 둘이서 여행하는 것이 특별히 무슨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일단 하룻밤을 외박해야 하므로 어머니에게 말했는데 완고한 어머니는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에게는 여자 친구하고 둘이서 간다고 했다. 소영이의 여행준비는 배낭에 타올이나 치약, 칫솔 갈아 신을 양말을 챙기는 것 뿐 이었다. 산속에 있는 그 마을은 벌써 추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청바지에다 두툼한 스웨터 차림을 했다.
그들은 야간행 열차를 탔다. 그리고 새벽녘에 역에서 내렸는데 멀리 바라보이는 산봉우리에는 벌써 새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 역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소영이와 유일호는 가지고 온 도시락을 까 먹었다.
주위의 풍경은 가을빛 일색이었다. 들판과 산에 울창하게 덮힌 초목들, 그리고 모든 것이 불타는 듯한 울긋불긋 단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며 차창에 펼쳐지는 가을의 색감짙은 경치를 내다보면서 소영이는 어젯밤 성북역에서, 유일호가 청바지에 배낭을 둘러맨 그녀의 모습을 보고, “넌 그런 자연스러운 차림이 훨씬 돋보이고 매력이 있어 보이는데……”
하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화장을 하고 정장의 스타일을 했을 때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듣는다는 것도 역시 기쁜 일이지만, 오히려 우아한 칭찬을 듣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는 소영이었다. 그러나 되는 대로 차려입은 모습에 대해 칭찬의 말을 듣는 것만큼 오히려 여자의 마음을 달콤하게 흔들어 주는 것도 없는 듯 싶었다. 소영이는 확실히 그순간 유일호라는 사나이에 대해 알지 못할 호의, 사랑의 파릇한 새싹 같은 것이 가슴에 움터 오고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벽촌까지 별 어려움 없이 도착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솜덩어리 만큼 밖에 무겁지 않게 느껴지던 배낭이, 점점 어깨에 파고드는 것처럼 느껴져 갔지만 소영이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생각하고선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일체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소영이와 유일호가 그 날 밤 신세를 지게 될 농가는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이었다. 방바닥의 감촉도 생소하게 특이한 것이었다. 눅눅히 젖어 있는 듯 했으며 때가 잔뜩 끼어 우중충한 페인트가 두껍게 칠해졌다가 벗겨져 가고 있는 방이었다. 더덕더덕 허물어지는 벽에는 여러해 전 잡지에서 뜯어낸 듯한 여배우 사진들이 붙여져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겨우 여자의 얼굴이라고 알아 볼 정도로 더럽혀져 있었다.
보리밥에 토란국 그리고 퀴퀴한 젓갈 한 가지 뿐인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 집 주인의 소박한 푸념을 들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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