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 같은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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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같은 어른들
  • 윤여문<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6.08.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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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은 여름방학마다 고등학생 대상의 ‘방송예술캠프’를 개최한다. 대학 진로를 선택하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평소 관심 있는 예술에 대해 잠시나마 맛 볼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캠프가 개설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방문한 학생들로 캠프는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사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예술을 배우면 얼마나 배우겠냐마는 대부분의 지원자 학생들은 만족하며 돌아간다.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낯설어하다가도 마지막 날에는 어느새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매년 반복되는 패턴이다.

올해 이 캠프가 나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수료식 중에 일어났다. 계열별로 학생들에게 상장을 수여하고자 사회자가 학생을 호명했다. “뮤지컬 전공 우수상 수상자는 단원고 김oo학생입니다.” 단상 맨 앞에 앉아 각 학과 수상자들이 상장을 받을 때마다 기계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던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단원고’라는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졌고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몰랐던 눈물이 금세 고였다. 다음 시상 학과가 우리 음악과였고 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간신히 학생에게 상장을 수여했지만 폐회식이 끝날 때까지 먹먹해진 마음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아직도 나에게는 ‘세월호’와 ‘단원고’라는 단어는 금기인 듯하다. 그 끔찍한 일이 발생되고 사회는 한동안 반목과 대립, 균열되었지만 어느새 잊혀졌다고 생각했다. ‘아픔은 절대로 시간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대전제를 믿고 있었음에도 벌써 몇 년이 지난 이 사건이 여전히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일 줄은 몰랐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가 섬뜩한 제목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 기사를 클릭하지 못하고 곤혹스런 마음으로 얼른 넘겨버린다.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과 사회에 환멸을 느낄 뿐이다. 어제는 잠을 설쳤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뉴스를 검색하다가 가슴 아픈 기사를 읽어버리고 말았다. ‘햄버거 먹고 숨진 4살 여아, 28시간 굶긴 엄마의 학대’ 기사를 클릭하지 않아도 내용이 대충 짐작 간다. 순간 기분이 상해버렸다. 자극적으로 제목을 쓴 기자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날은 훤히 밝아오는데 분을 이기지 못한 나는 잠을 잘 수가 없다.

4살 난 아이가 햄버거를 먹고 양치질을 하다가 쓰러지자 꾀병이라고 생각한 엄마는 아이의 머리와 배를 걷어찼다고 한다. 어떻게 4살짜리 여자 아이의 머리와 배를 걷어 찰 수 있단 말인가. 그 작고 귀엽고 예쁜 아이의 앙증맞은 머리와 배를 말이다. 나는 정말 궁금하다. 어떻게 아이를 28시간 동안 굶길 수가 있을까. 밥을 주지 않은 엄마는 그 시간 동안 함께 굶었을까. 4살짜리 아이를, 그것도 여자 아이를 때릴 목적으로 신문지를 촘촘히 말아 몽둥이를 만드는 동안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발길질에 의식을 잃은 딸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데 무심히 쳐다보며 아이가 있는 차가 아닌 다른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면서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이가 있던 응급실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복도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으며, 아이의 죽음을 알리는 의사의 말을 어떻게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도대체 4살짜리 아이가 무엇을 그리 크게 잘못하면 28시간 동안 밥을 먹지도 못하고, 엄마에게 이틀에 한 번꼴로 온 몸에 피멍이 생길 때까지 폭행을 당하고, 기절한 동안에도 머리와 배를 걷어 차여야 하는 걸까.

어른들이 문제다. 조금이라도 책임감 있는 어른들을 만났다면 단원고 아이들은 꽃다운 나이에 시커먼 바다 속에서 희생되는 대신 지금쯤 대학 강의실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다정한 엄마를 만났다면 네 살짜리 여자 아이는 차가운 응급실에서 가엽게 죽는 대신 한 참 예쁜 재롱으로 주변을 밝게 빛내며 자라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유일하게 잘못한 것은 실내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꼼짝없이 있으라는 비겁한 어른들의 말을 믿은 것과, 그렇게도 모질게 학대당하면서도 나를 보호해줄 사람은 엄마가 유일하다고 믿은 것뿐이었다. 결국 어른들이 문제다. 병신 같은 어른들 말이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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