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짐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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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짐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
  • 이현조<문화in장꾼·시인·주민기자>
  • 승인 2016.09.30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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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仁)이라는 글자가 두 사람(二人)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하는 마음씨(愛心)」라고 할 수 있다(仁者愛人). 여기서 사랑이란 남녀 간의 사랑이나 친구간의 사랑이 아니라, 이성적 도덕관념에 기초한 자각적 상호간의 이해와 존중을 가리킨다. 공자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말하며, 진심과 이해심(忠恕)을 강조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겸손하고 근신하는 태도를 바랬다.

의(義)는 공공의 도리이며, 옳은 것을 지키고 실천에 옮기는 도덕적 행위의 기준이다. 의는 고정되지 않고 환경이나 사건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보편적 인간애(人間愛)에 바탕을 둔 용기와 신념에 따라 스스로 옳다고 판단한 것을 실천에 옮김으로서 사회정의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예(禮)에는 구별과 융합이라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예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하(上下), 존비(尊卑), 친소(親疏), 촌수의 가깝고 멂(遠近)을 구별하여 차별화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일괄 평등하다면 예라는 것이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인격적으로는 평등할지언정 가정 내에서의 지위가 같을 수 없다. 확대되면 황제와 신하의 경우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게 구분인 것이다. 예의 또 다른 작용은 위와 같은 상하, 존비, 친소, 원근의 관계를 조절하여 서로를 화기애애하게 융합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이 없다면 예란 단지 구속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智)는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지적능력이다. 진리의 탐구도 이 같은 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가능하며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과 사물에 대한 통찰력(洞察力)도 가능하다. 그러나 유학(儒學)에서는 단순한 앎을 넘어 실천을 요구한다. 즉,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릇된 것을 버리고 옳은 것을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다. 지에서 끝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예(禮)에는 단지 삼엄하고 엄격한 등급질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유대관계를 온정이 넘치게 만드는 인의 성분도 있다. 공자는 옛 것과 새로운 것을 절충하여 예(禮) 속에 포함된 강제적인 엄격함을 다소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인을 추가하여 따뜻한 마음씀씀이를 말하고 있다. 공자는 ‘군자가 가까운 이에게 돈독히 하면 백성들 사이에 인(仁)한 기풍이 일어난다’고 하여, 그 사랑의 베풂을 자기와 가까운 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혈연을 중시하였다. 부모형제에서 출발한 화기애애함이 삼촌 고모 사촌 육촌 팔촌으로 일파만파 커지면서 결국 세상에 친척 아닌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범혈연적 관계는 다시 자신이 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와 존중이 있으며, 이 사회에 예가 만연하고, 사람들이 올바른 가치관에 따라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여 인간다운 삶이 실현되는 사회’를 당신은 원하지 않나요?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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