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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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9>
  • 한지윤
  • 승인 2017.05.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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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소영은 대학1학년 때부터 연극부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 써클에라도 적을 두고 활동해야 한다는 공고가 캠퍼스 게시판에 나붙었기 때문에 탐탁치않게 여기며 연극부에 가입했던 것이다. 소영은 연극에 도통 흥미를 느끼지 않았었다.
설령 사르트르나 베케트의 원작이나 어느 누구의 각본이라고 할지라도 인생의 모습들을 몸짓 하나, 표정 하나, 그리고 경박한 투의 대사를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감히 해 댄다는 것은 인생 자체를 모독하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영은 인생 자체가 극히 드리마틱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그녀 자신으로서도 인생의 드라마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올라선 드라마까지에 신경을 쓸 여유가 도저히 없었던 것이었다.
경성여대의 연극부에서는 해마다 한 번씩 이웃에 있는 J대학교의 연극부와 합동으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J대학교는 기독교계 대학으로 몇 년 전까지는 남자들만이 입학하는 학교였다. 그러나 학교의 이사진들이 바뀌면서 여자들도 입학을 허가하여 남녀공학의 대학교가 되긴 했지만 아직도 남자 대학다운 교풍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여학생들의 입학지원이 많지 못한 대학교였다.
금년도의 정기공연도 소위 남녀 대학간의 인간교류,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성교제에 은근히 목적을 두고 행해진 행사였다. J대학교의 입장에서는 남자가 여자로 분장할 경우 통나무같은 종아리에 수북히 돋은 검은 털이 좋아 보일 것도 없으며 마찬가지로 경성여대에서도 남자역으로 분장한 등장인물이 엉덩이가 펑퍼짐하게 크고 목소리나 얼굴이 그 모양이라면 역시 어울리지 않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연극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 두 학교가 함께 공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레퍼토리는 폴란드의 신예작가 <코페츠키> 원작 <검은 목걸이>가 선정되었다.

한 여자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미남 청년에게 사랑할 수 없는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여자는 자산가 계급의 출신이었지만 공산주의자였고 남자는 자유주의자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전란은 이 두 젊은이로 하여금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두 주인공은 각자 서로 상대방이 전쟁으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 두 남녀는 저녁노을이 붉게 타는, 이미 폐허로 변한 바르샤바의 언덕에서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를 잊고 두 주인공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은 어느 새 바뀌어져 있었는데 남자는 당원이며 공무원이었고 여자는 전쟁 전과는 정반대로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서로 전혀 모르는 채 함께 춤을 추기도 하며, 근교로 나가 숲 속에서 사랑을 확인하기도 했다.
마침내 그들의 정체가 서로 알려졌고 놀란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려고 했다. 이윽고 두 주인공은 서로 실갱이를 벌였고 남자가 여자를 죽이려고 덤벼들다가 그만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여자의 칼이 남자의 심장을 찌르고 말았다.
풀 위에 피를 쏟으며 숨이 끊어진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을 때 여자는 그의 가슴에 걸려 있는 목걸이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를 별견했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사랑한 것은 공산주의가 아닌 순수한 사랑의 정열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자는 이미 죽은 그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그 검은 목걸이만이 그의 단 하나 남은 인간의 진실이며 거짓 없는 얼굴이었다고 여자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검은 목걸이>의 대강 줄거리였다.

“이번 연극에 너도 한몫 해줘야겠어.”
평소에 얼굴을 맞대고 대화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연극부의 차장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았을 때 소영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일단 연극부 써클에 가입한 이상 자신이 연극을 별 볼일 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장에게 알릴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응…… 알았어. 하지만 난 요란스럽고 웃기는 역이 아니면 싫다.“
소영의 말에 차장은,
“어머, 이 역은 모두들 하고 싶어 하는 걸 내가 네게 배역을 했는데 넌 왜 그래!”
하고 말했다.
소영에게 주어진 배역은 주역인 여자가 아니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여동생인 미인 역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이름은 로자.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었으며 언니와는 달리 요정과 같이 우아한 여자였다. 로자에게는 대학생 애인이 있었지만 그녀는 종전의 날을 보지 못하고 가족들에게는 끝없는 위로를 주면서 결핵으로 죽고 만다.
“왜 나한테 이 역을 시키는 거지!”
“넌 딴 애들보다 날씬하고 로자역답게 잘 생겼잖아.”
“소영아 그날 버터를 실컷 먹고 뚱뚱하게 돼 줘라. 얘, 네가 시침 뚝 떼고 죽어 버리는 배역의 연극을 한다면 내가 오히려 웃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얘, 키스하는 장면도 있어.”
“그러면 무대 위에 오르기 직전에 마늘이라도 먹어 둬.”
“응, 그렇게 해야겠구나.”
각본 읽기의 첫날은 J대학교에서 했다. 소영이도 참석했는데 연습을 위한 모임의 분위기는 진지하다 못해 긴장감이 감돌 정도였다. 물론, 보든 본성은 드러내 놓지 않고 점잖게 웃거나 말하거나 했지만 여자들은 지나치게 남자들을 의식하고 있는 눈치였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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