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 <12>
유선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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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 <12>
유선자 수필가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10.2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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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자 수필가
유선자 수필가가 지난달 18일 충남문학관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참여해 자신의 수필 한 대목을 낭송하고 있다.

사물과 현상을 보는 첨예한 시각과 사유의 깊이를 간직
2001년 ‘예술세계’ 통해 등단 후 2014년 첫 작품집 발간
홍동면 금당리서 태어나 금당초·홍동중·광천상고 졸업
두번째 작품집 시집 준비… 취미로 사진찍는 실력 탁월


서리가 내리면 가을은 끝나간다. 자연의 신호는 가차 없이 한 생명을 거두고 또 다른 생명을 준비하는 혹독한 겨울을 우리에게 보내준다. 서릿발은 차갑고 매몰차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한 번의 힘으로 계절의 흔적을 바꾸어 버리는 서리, 그것은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간의 다리를 앞당겨 놓아 주는 숙살지기(肅殺之氣)의 힘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산책길 저쪽에서 노인 두 분이 지나가면서 말씀을 나눈다. “오뉴월 서릿발이 어떻다고? 아니, 할망구가 한을 품으면 어떻다고? 에구, 사는 게 뭔지 모르겠어. 그야 서리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시나브로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한 숲길은 조금씩 비어가고 을씨년스러워진다. 내 삶의 가을은 어디 쯤 오고 있을까? 아직은 푸르고 뜨거운 열정이 넘친다고 생각하는데 내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아! 아직 여물지 않았는데, 아직 열매도 제대로 맺지 못했는데….

수필가 유선자의 ‘서리 맞은 호박’이라는 제목의 글 가운데 마지막 대목이다. 이 글의 생략된 앞 부분에서 작가는 깊어가는 가을 단풍나무 숲을 묘사하면서 아흔 고개를 바라보는 시아버지와 자신이 쇠락의 계절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작가는 가을 햇살에 구리빛으로 탄 얼굴의 노인이 서리를 맞은 듯한 갈무리 새끼호박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맛이 있을지 궁금해 한다. 노인이 아주 맛있다고 장담하는 말을 듣고서야 계절의 변화로 호박이 서리를 맞고 시들면서 마지막 기운을 받아 매우 단단해지고 맛이 든다는 것을 깨달으며 선뜻 사간다. 그리고 위의 문장처럼 독백이 이어진다. 아직 작가 자신은 성숙하지 못한 상태인데 가을이 저물고 냉혹한 겨울을 맞이해야 하니 마냥 두렵고 조바심하는 여심을 표현하고 있다.

■깊은 사색과 명상에서 우러난 글
기자가 유선자 작가를 처음 만났던 것은 지난달 18일 충남문학관에서였다. 그녀는 충남문학관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외지에서 온 손님이었는데, 사실 외지인도 아니었다. 홍성 출신으로 소개가 돼 자신의 수필 한 대목을 직접 낭독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기자는 그녀의 저서를 한 권 선물로 받기도 했다. ‘풀꽃에 머무는 바람의 노래’(소소리)로 2014년 12월 발행한 그녀의 수필집이었다.

그 후 기자는 그 책을 읽으면서 차원이 다른 수필의 정수를 맛보는 행운을 누렸다.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얻은 소재를 갖고 쓴 글이라도 잡문이 있는가 하면, 깊은 사색과 철학적 명상에서 우러난 글이 있기 마련인데 유선자의 수필은 바로 후자에 속했다. 서두에서 인용한 글도 그 책에 실렸던 것으로 그 밖에도 모든 글이 감미로우면서도 탁월한 필치로 작가의 철학과 성숙한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수필가협회 정목일 이사장은 유선자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유선자 수필을 대면하는 일은 뜻밖의 기쁨이다. 일상의 신변잡사를 감성적으로 형상화시킨 수필이 아닌, 사물과 현상을 보는 첨예한 시각과 사유의 깊이를 간직한 수필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경지가 있고, 남들이 눈 여겨 보지 않는 미세하거나 평범한 모습에서도 생명의 숨결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다. 보잘 것 없는 사물과 일상에서도 금싸라기 같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낼 줄 아는 마음의 눈을 지녔다.”

■명리학에 심취 강사로 바쁜 생활
지난 13일 오후 기자는 거의 한 달만에 유선자 작가를 용인에서 만났다. 경희대 용인캠퍼스 부근에 ‘삼성노블카운티’라는 곳을 찾아갔는데 거기서 그녀는 강의를 한다고 했다. 으레 수필작법에 대해 강의하리라고 생각했으나 완전히 빗나갔다. 명리학을 강의한다고 했다. 너무 뜻밖이었다.

“수필집 한 권을 내고 수필에 대해 무슨 강의를 합니까. 적어도 책 3권 정도는 내야 강의를 할 수 있지.”

원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녀가 명리학에 빠진 것은 결혼 후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아기가 14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아토피가 심한 가운데 그녀는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수강생 학부모 중 한 사람이 요청해서 생년월일을 알려줬더니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정확하게 알아내더란다. 너무 신기해서 물어보니 그는 명리학을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바로 명리학이 개설된 대학을 찾아가 등록했다.

“생년월일만 갖고도 성격을 분석할 수 있는 학문이 다 있었는지 놀랐어요. 명리학은 운명의 이치를 다스리는 학문입니다. 인생 설명서요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죠. 저만 알고 있으면 되겠나 싶어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비록 한 권밖에 내지 않았지만 수필문학의 모범답안 같은 작품집을 낸 작가로서 수필작법에 대한 강의도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녀는 아직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필은 2001년 ‘예술세계’를 통해 늦깎이로 등단을 해 아직 짧은 작가이력과 한 권의 작품집으로는 감히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유선자의 첫 수필집 ‘풀꽃에 머무는 바람의 노래’

■독서·논술지도 고민하다 수필 배워
유선자 작가는 19 63년 홍성군 홍동면 금당리 성당마을에서 태어났다. 금당초교, 홍동중, 광천상고(현 광천제일고)를 나왔다. 정작 어릴 때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저는 초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어요. 웅변도 잘 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홍동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일찍 돈 버는 게 좋다고 상고를 보냈어요.”

그러나 상고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그녀의 적성에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졸업 후 대우 본사에 취직했다. 대우 전산실에서 근무를 했는데 서울 명문대 졸업생들 사이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고 한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이화여대 출신들 틈바구니에서 심한 열등감을 느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방송통신대를 다니며 나름대로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어도 배웠다. 그래서 그 틈에서 살아남아 사보 기자로도 발탁되어 글도 쓰고 회사에 일본 손님이 오면 통역을 맡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수필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이 둘을 낳고 나서부터였다. 독서와 논술지도에 대해 고민하다가 지연희 수필가를 만나 1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밖에도 그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고 정목일 수필가를 꼽는다. 한국 수필문학을 대표하는 거목들로부터 제대로 배우고 여전히 롤모델로 삼고 있는 그녀로서는 감히 자신을 드러낼 수가 없다. 그래서 상을 주겠다는 요청도 받고 있지만 번번이 사양하고 있다고 했다.

“상에 대해서는 탐닉하지 않습니다. 아직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정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작품집도 일찍 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예술세계 출신 작가들끼리 결성된 예술시대작가회 회장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서 어쩔 수 없이 출판했다고 한다. 한국예총에서 발간하는 월간지로서 예술세계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은 전국에 고루 분포하고 있는데 그녀는 ‘풀꽃에 머무는 바람의 노래’를 출간하고 나서 약 1년 후 회장에 당선돼 2016년 한 해를 이끌었다.

“저는 나이 60이 넘으면 책을 낼 생각이었어요. 회장이 되려면 꼭 작품집을 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상대후보가 약점을 잡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일찍 내게 됐어요. 어차피 베스트셀러가 될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얘기도 정리해 많이 넣었어요.”

그래서 책이 나온 후 집에 쌓아놓고 아는 사람들에게만 보냈는데 뜻밖에 좋은 반응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호평하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게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두 번째 작품집으로 시집을 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시뿐만 아니라 그녀는 사진 찍는 실력도 탁월하다. 첫 작품집에는 직접 찍은 풍경화를 삽화로 삼아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제공한다. 요즘 성능 좋은 스마트폰으로 어디를 가든 서정적인 장면을 발견하면 놓치지 않고 찍어둔다.

“글을 쓰면 카타르시스가 되고 누군가에 대한 화풀이가 저절로 해결됩니다. 속앓이가 해소돼요.”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붓 가는 대로 쓰라’는 피천득의 수필론을 오해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실력이 있어야 붓 가는 대로 쓸 수 있습니다. 내공이 없이는 붓 가는대로 쓸 수 없어요. 피천득 선생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말고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녀의 고향 홍동면 금당리에는 아직도 아버지 유태섭(83) 씨와 새어머니가 노후를 보내고 있다. 고향에서 가까운 예산군 광시면 운산리에 있는 충남문학관 이재인 관장은 예술시대작가회 초대회장을 지낸 대선배여서 30대회장을 지낸 유선자 작가는 부르기만 하면 수원에서 언제든지 달려온다. 이래저래 고향과 멀어질 수 없는 그녀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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