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누구에게나 똑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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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누구에게나 똑같죠”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7.10.28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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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작가, 사회복지사에서 캘리그라피 전업작가로 전환

장애인창의문화예술연대 ‘잇다’ 창립, 문화예술 통해 지역과 호흡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이은희 작가.

흔히 장애인들에게 ‘극복’이라는 말은 버거운 단어다. 사고 후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이은희(46) 작가는 1년 2개월의 병원 생활이 너무 끔찍했다고 회상한다.

“여러 번의 수술 과정이 너무 힘들었고, 내가 장애를 가졌어도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그저 예전의 이은희인 거잖아요. 삶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인데 장애 극복이라는 시선은 조금 부담스러워요.”

절망이나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퇴원했던 그녀에게 대학 동기와 선배들이 캘리그라피를 권유했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했는데 그 때만 해도 워낙 원로선배들이었고 일단 그 분들의 기에 제가 너무 많이 눌렸어요. 저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저하고는 잘 맞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15년 전 선배들이 먼저 캘리그라피 모임을 만들었고 서울과 대전 등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공부했죠.”

캘리그라피(Calligraphy)란 ‘손으로 그린 문자’라는 뜻이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글귀를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쳐가는 효과, 여백의 균형미 등을 살려 작업하는 것을 말한다.

이은희 작가는 행사 퍼포먼스나 시연회를 하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연회에서는 적게는 300장, 많게는 500장의 캘리그라피를 작업하고, 퍼포먼스는 휠체어를 타고 상반신을 많이 움직이면서 하는 것이니 일반인들보다 체력소모가 더 심하다. 그 외에도 학교와 일반인 대상으로 강의도 한다.

“제가 가진 것을 제대로 가르쳐 나누고 싶은 욕심과 제 자신을 노출시켜 장애인라는 시선에서 조금은 편안하게 하고 싶은 생각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나 정작 쉽지 만은 않았다. 어떤 학생들은 스스로 나서서 배려해 주기도 하지만 또 어떤 학생들은 그녀를 눌러보고 싶은 마음에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딸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기도 한 이 작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2015년 장애인창의문화예술연대 ‘잇다’를 창립하기도 한 이 작가는 “많이 어려워요. 지원을 받기도 어렵고 창작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활동가가 무보수로 봉사하는 것 등 문화예술 단체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네요”라고 말한다.

그런 이 작가의 소망은 지역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이 같이 호흡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의 지원과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사회활동,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예술이 우리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지난 20일 이 작가는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았다. 마흔 살이 되면서 전업작가로만 활동한 그녀에게 더 없이 반가운 일이다.

“10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작업했는데 그냥 작가로만 살다보니 작업시간이 많아서 좋아요. 그런데 말이죠,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제 정체성은 그저 장애인인데 작가라고도 하잖아요. 그 괴리감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까요?”

예술은 그저 예술일 뿐이다. 그곳에는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 라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만의 작업일 수 있는 캘리그라피를 퍼포먼스와 강의라는 형태로 지역과 같이 호흡하고자 하는 이 작가의 활동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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