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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9>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하기야 오십 대의 사람입니다만 정성스레 불공을 드렸더니 그 덕분으로 아이를 얻었다는 일도 있긴 했지요. 십삼 년만이라고 하면서 퍽 좋아하더군요. 외동아들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들을 믿으십니까?”

“글쎄요‥‥‥ 부처님께 불임증의 치료를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불공도 기도도 좋다고 보는 편입니다.”

“양자를 맞아들이면 시샘으로 임신을 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만 양자라도 들여 보라고들 하던데‥‥‥”

“그건 나로서는 반대입니다. 임신을 하기 위해 양자를 들인다는 것은, 만일 부부 사이에 정말 아이가 태어날 경우 양자로 들어온 아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절망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면 하느님이 아이를 점지해 주시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 않겠어요?”

“글쎄요, 가능성이 있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떻든 오늘 대단히 고맙습니다.”
사형 판결과도 같은 절망을 주지 않는 대신에 희망도 지나치게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한 박사의 처방이었다. 이것은 의사로서의 일종의 테크닉에 속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이렇게 하는 것만이 절대로 옳은 일은 아니다. 결국 세상은 모두 그런 것이다. 인간이란 미련과 털끝 같은 희망을 위해 그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삽화·신명환 작가

임씨 부부의 경우는 그것이 주사라고 하는 값으로 지불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임씨 부부가 진찰실을 나간 뒤 두 번째 중절 환자를 불러 들였을 때 한 박사는 점차 일에 리듬이 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환자의 얼굴은 거의 보지 않았다. 물론 의학적으로 필요한 정도는 관찰하면서 일을 했다.

한 박사가 환자의 얼굴을 잘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시력의 탓은 물론 아니다. 시력은 남들보다 좋은 편이었다. 산부인과 의사란 특이한 매력을 갖고 있는지 모르나 이쪽에서 묻는 것도 아닌데 상대는 곧잘 먼저 가정사정을 이야기 해 온다. 시어머니의 험담으로부터 시작해서 남편의 외도라든지 기타 가정 얘기들을 잘 털어 놓는다.

“실은 이 아이는 우리 주인의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고백까지 하는 여자도 있었다.
가만히 한 박사가 들어 주기만 해도 증상이 나아지는 환자도 있는듯 싶었다. 한 박사는 이런 부인 환자들에게 이런 류의 의논 상대는 가능한 피하기로 하고 있었다.

이 근방의 아주머니나 여자들이라면 몰라도, 번화한 거리를 걸으면서, 아, 저 여자는 우리 병원에 온 일이 있는 환자였구나 하고 생각하기가 싫어서였다. 상대 쪽도 그럴 것이다 싶어 환자의 얼굴을 바로 보고 이야기 하지 않는 버릇이 한 박사에게 생겼는지 모른다.

차트에 기록된 이름은 신미란·이혼·스물여덟 살, 두 번째의 중절이었다. 최종 월경에서 계산해 보니 6주째였다. 생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입덧 같은 현상이 나타나서 진찰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이 환자는 다른 사람과 다소 다른 점은 마취가 되자마자 좀 심한 딸꾹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 여자는 조금 심한 편이었다. 한 박사는 광대뼈가 남보다 두드러지게 나온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을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임신초기의 중절이라서 그런지 융모악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가 없었고 딸꾹질도 곧 그쳤다. 수술을 끝낸 이 환자는 힘이 센 이나미 간호사에 의해 5분 후에는 안정실에 눕혀졌다. 이미 수술이 끝난 문주희는 어둡던 실내가 밝아지자 멍청히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으나 아직 일어나서 돌아갈 기분이 아닌 모양이었다.

한 박사가 오전 진료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사택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이분 간호사가,
“선생님!”
하고 한 박사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뭐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나 간호사는 말하면서 이나미 간호사에게 눈짓을 했다. <계속>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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