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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의 의미

김옥선 <본지 취재부장>

며칠 새 날씨가 많이 포근해졌다. 그래도 아직은 한겨울이다. 내복과 패딩을 껴입어도 몸으로 들어오는 냉기가 선뜻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추운 날, 나이 지긋한 마을 분들이 삭발을 감행했다.
지난 16일 군청 앞에서 서부면 거차리 주민들이 돈사건립 반대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그 전 날인 15일에 나이 지긋한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집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군수를 만나야 한다” 등등 주민들의 반대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 자리에서 바로 ‘돈사반대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여자를 대표해 내가 추진위원회에 들어가겠다”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주민들은 적극 나서서 반대집회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추진위는 군청까지 교통편이 없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관광버스를 빌리고 점심으로 먹을 김밥과 오뎅 국물도 준비했다.

집회 당일, 70~80대 할머니들이 앞쪽에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아 하얀 머리띠를 두르기 시작했다. 비록 영상의 날씨였지만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 날이 잔뜩 궂어 오랜 시간 야외에 나와 있을 어르신들의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라고 기자가 묻자 “이 정도로 안 죽어. 돈사 들어오면 내가 죽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과연 무엇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마음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잠시 후 김영범 이장과 서정웅 추진위원장의 돈사반대 결의 삭발식이 진행됐다. 마을 주민 누군가는 “울지 마!”를 외쳤다. 서정웅 추진위원장은 “울긴 왜 울어?”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김영범 이장은 삭발 내내 가만히 눈만 감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회색빛 머리카락은 불어오는 바람에 끄덕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주민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

삭발은 자신의 의지를 결연히 보여주는 하나의 의식이다. 더구나 이미 60대를 넘긴 어르신들이 삭발까지 감행하며 투쟁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머리카락은 언젠가는 자란다. 그러나 돈사가 들어오면 다시 내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그 폐수가 마을 저수지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천수만 지구로 흘러들어가 수자원을 오염시키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홍성군 내 축사가 이미 많이 들어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규모 축사들이 줄줄이 허가 신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조례가 타 지자체보다 느슨한 형태기 때문이다.

‘홍성군 가축사육 제한구역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생활환경보전이 필요한 주거밀집지역의 일정한 지역에서 가축사육을 제한함으로써 쾌적한 생활환경보전과 주민보건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 조례 제2조 3항에는 주거밀집지역의 정의에서 주택이 12호 이상 모여 있는 지역으로 주택 간의 거리가 주택건물 외곽과 외곽이 상호 100m를 연접해 이어진 지역이라고 명시돼 있다. 주민들은 “내포에 축사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뭐가 달라지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에 대해 공무원들은 법대로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만 반복할 뿐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주민들의 끝없는 민원과 공무원들의 법대로 절차 방식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르신들의 삭발 투쟁이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김옥선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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