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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16>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마테오 신부의 말이었다.
“금슬이 좋거나 나쁘거나 이 세상엔 좋은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박 여사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한 박사가,
“잠깐,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해요. 이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일 하나도 없다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이 나쁘면 끝이 좋고, 처음이 좋으면 끝이 나쁘고‥‥‥”
그 때 마테오 신부가 박 여사를 잠시 바라보다가,
“누님이 별장에 혼자 살고 있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쓸쓸한 곳이라고는 정말 몰랐습니다. 역시 이 집은 바깥어른의 추억이 구석구석 배어 있어 팔지도 않고 이렇게 혼자 살고 있는 셈이군요‥‥‥ 안 그래요?”

박 여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글쎄, 여기 있는 현재의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아요. 그래도 행복했던 과거가 아름답게 회상이 된다니까요.”
“한동안 행복했다가‥‥‥”
라고 한 박사는 위스키 잔을 든 채로 눈을 지그시 감고 중얼거렸다.
“행복이니 아름다웠다느니 하는 용어는 남자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지요. 여자들의 전용어쯤 되어 있지 않을까요? 아마‥‥‥”
“남자들은 왜 잘 사용하지 않는지 몰라.”
“그건 과거형이거나 미래형밖에 더 안 되기 때문이겠지요. 행복이란 용어는 항상 과거의 추억 속에서나, 미래의 꿈으로서만이 얘기가 되는 것인데 남자란 현실을 이야기하기 좋아 하는 편이거든요.”

한 박사는 신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그래요. 역시 신부님은 다르셔. 난 지금까지 막연하게만 느껴 왔는데 그렇게 명료하게는 의식한 적이 없죠. 연옥이 누님이 이웃 하나 없는 바닷가 낭떠러지 위의 이런 집에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렇게 외딴 곳에다 집을 짓지는 않겠죠.”
신부가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바다가 아름답지 않아? 이렇게 장엄할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다른 것을 포기해야 되잖아. 쓸쓸하다거나 불편하다거나 바람이 너무 세다거나 하는 건‥‥‥”
“동감인데요. 뭔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댓가를 치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박사는 취기가 도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었다. 박 여사는 이야기 도중에 부엌 쪽을 들여다보면서,

삽화·신명환 작가.

“어머, 벌써 밥이 다 된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전기밥솥에서 밥 끓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두 분 다 저녁을 하셨겠지만 간단한 야식을 내가 만들어 드리지.”
“누님이 그렇게 하실 것 같아서 조금만 먹고 왔지.”
한 박사가 농담조로 말했다.
“어머머, 또 저래, 우리 집에서 내는 건 김치뿐인데‥‥‥ 쌀이 참 좋아요.”
“국에는 무얼 넣었어요?”
한 박사가 물었다.
“다시마 하고 조갯살.”
부엌에서 박 여사의 대답이 들려 왔다.
“매일 몇 사람이나 환자를 받고 있습니까?”
마테오 신부가 조용히 물었다.

“글쎄요, 한 20명에서 30명가량 될까요? 두세 사람의 중절수술이 있고, 두 서너 사람의 해산도 있고, 여러 종류의 수술도 있고, 또 불임의 상담이 5~6명 정도 되죠. 대략 그 정도이지요.”
“인공수정도 병원에서 하고 있습니까?”
“네, 하고 있습니다. AID라고 해서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만은 정액의 제공자가 없어서 제 병원에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때로 선생님 것이라도 좋으니 해 달라는 안타까운 환자도 있기는 하지만‥‥‥”
때때로 라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단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좀 모자란 듯한 여자 환자가 왔을 때의 일이었다. 꼭 AID를 희망하거든 제공자를 찾아오라고 한 박사가 말했을 때 그녀는, “선생님 것이라도 좋으니 해 주실 수 없어요?”
하고 말한 것 뿐이었다. 물론 인공수정을 해 달라고 왔으니 그녀의 남편과도 몇 번 면담을 했었다. <계속>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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