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 중독 아버지와 보낸 15년 동안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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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 중독 아버지와 보낸 15년 동안의 인연
  • 이철이 청로회 대표
  • 승인 2018.04.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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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삼촌의 쉼터이야기<66>

나에게 홍성의 ㄱ병원에서 3개월에 한 번씩 전화가 온다, 병원에 입원한 김홍철 씨(가명)의 퇴원수속 때문이다.

김 씨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병원에 입원해 알콜중독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다가 2년 전에는 ㄱ병원으로 옮겼다. 문제는 그 병원의 규칙상 3개월 이상은 계속 입원이 안 된다. 입원해 만기가 되면 일단 퇴원을 했다가 재입원해야 한다. 예전에는 입원주기가 6개월씩이었는데 지금은 3개월로 단축되었다. 그런데 김 씨는 퇴원해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 때마다 병원에서는 나에게 전화를 해 쉼터에서 며칠 머물다 다시 입원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김 씨를 만난 것은 15년 전이다. 어느 날 사회복지사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알콜중독에 빠져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는데 그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교에도 못 가는 실정이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사회복지사와 통화를 마치고 그 집에 가봤다. 아버지는 대낮부터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옆에서 아들은 멍하니 넋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얘야, 나하고 쉼터로 가서 살지 않을래?” 아들은 당장 입을 옷가지를 몇 개 주섬주섬 챙겨 나를 따라왔다. 나는 쉼터로 와서 우선 아이의 밥부터 챙겨 먹이고 아이 옆으로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내가 보기에 아이는 특별한 장애는 없어보였다. 그런데도 대인기피증 같은 모습을 보였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려고도 않고 말을 걸어 봐도 대답이 없었다. 알콜중독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사람 접촉 없이 외롭게 살아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아빠는요?”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말도 없고 생각도 없을 줄 알았던 동철이가 아빠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집에 혼자 놓아둔 아빠 걱정을 하는 어린 아들의 마음 씀씀이가 대견스러웠다. 혈육의 정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철아 아빠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아마 내일쯤 사회복지사가 병원에 입원 시킬 거야. 그곳에서 의사와 상의한 후에 알콜중독자들이 치료받는 병동에서 치료받을 거야.” 그 후 김 씨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설날에는 동철이와 김 씨 면회를 갔다. 아빠 면회를 가는 동철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면회실 책상에 올려놓고 김 씨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동철이는 아빠가 보고 싶은지 문 쪽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김 씨가 들어왔다. 동철이는 반가워 벌떡 일어나 맞았는데 김 씨는 동철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동철이는 아빠를 반갑게 맞으며 만두 한 점을 아빠 입에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 마음이 뭉클했다. 어린 동철이의 아빠를 향한 마음이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파 바라볼수가 없었다. 동철이가 힘든 가정사를 이겨내고 잘 커주기를 기도했다.

김 씨가 퇴원해 쉼터 내 방에서 함께 잠을 자는데 참으로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밤새 불안한 행동을 하며 한 시간이 멀다하고 잠에서 깨어나 앉았다가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가 하면 계속 이상한 말을 중얼중얼 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알콜중독자들의 전형적인 행동이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됐다.

동철이는 쉼터에서 생활하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새 서른이 되었다. 이제는 김 씨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직장에 다니는 동철이가 월급이 올라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김 씨가 퇴원해 쉼터에 올 때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15년 전에 이들과 인연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두 부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앞으로 동철이가 지고 가야 할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울까?

오늘도 김 씨는 퇴원해 쉼터에 머물고 있다. 아버지 퇴원에 맞춰 동철이도 쉼터에 왔다. 이제 며칠 후면 다시 입원할 것이다. 아들에게 더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내가 참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 씨와 동철이 부자를 위해 밥을 짓는데 지난 15년 동안 겪어온 사연들이 두서없이 뇌리를 스쳐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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