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과 정치 그리고 ‘데마고기’
상태바
속담과 정치 그리고 ‘데마고기’
  • 김상구 칼럼위원
  • 승인 2018.04.26 09:0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를 달포가량 남겨 놓고 여기저기 후보자들의 얼굴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들이 봄바람에 요란하다. 아직 거리유세가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후보자들의 마음을 그 소리가 전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교차로에는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피켓을 목에 걸고  지나치는 자동차를 향해 인사를 한다. 모두 나에게 한 표를 던져달라는 신호일 것이다. 이들이 선거에 당선 되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많은 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로 민주정치의 정치가는 유권자들의 표에 의해 결정됐다. 연설을 잘하는 것이 유리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修辭學)에 관련된 책을 쓴 것도 이러한 정치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정치는 ‘데마고기demagogy(선동적 허위선전)’를 수반했다. 그 당시에는 ‘데마고기’라는 말에 흑색선전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크게 내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으며, 선거에서는 이런 흑색선전의 이미지가 늘 작용한다. 선거뿐 만아니라 여론을 만들어 내는데도 이러한 부정적 전략들이 정치의 밑면에 흐르고 있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드루킹’ 사건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데마고기’를 사용하지만, 그렇게 해서 당선된 사람은 그 후유증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피해는 고스란히 그 조직에 돌아갔다. 제대로 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정치가 무엇이고, 내가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고 암담했던 시절, 베버는 뮌헨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정치에 대해 ‘신의 한수’를 바라는 군중들을 향해 정치학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상식적인 연설을 한다. 패망한 독일을 구할만한 정치적 묘수는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베버의 말을 빌리면, 합법적으로 당선된 정치인은 ‘정당하게’ 권력을 행사해야 하고,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힘이라는 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닌, 타고난 비범한 힘을 말한다. 이것은 종교사회학에서 예언가나 선지자(先知者)의 타고난 초월적 힘 같은 개념이다. 종교나 정치, 그리고 사회조직에서 조직의 논리가 점점 타락, 혼탁해 갈 때 이것을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정치가이고,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정당조직이다. 선지자가 나타나고 이것을 조직적으로 실천하는 교회가 필요하듯, 정당도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의 논리를 실천할 수 있는 조직적 구조를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힘을 가진 정치가.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베버는 도를 깨우치고 산에서 내려오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신념에 차 있어야 하고 목적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념과 목적은 유권자를 행복하고 잘살게 하려는 신념과 목적 윤리여야 한다. 여기에 내면적으로 조율된 냉철한 열정이 있어야하고, 사물과 조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권자는 정치인들이 이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야 그들의 데마고기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정치에 나서는 사람이 타자(他者)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기위해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한다. 공자도 나라를 다스리려면 수신제가(修身齊家) 해야 하고,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한 사람을 유권자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면 된다. 정당과 개인이 정책과 현란한 데마고기로 잠시 유권자의 눈을 현혹시킬 수는 있겠지만, 대개는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을 넘어서지 못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정신분석학자 라캉(Jaques Lacan)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개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기 때문이다.

김상구 <청운대 대학원장·칼럼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허연희 2018-04-28 00:08:20
데마고기...
사실 첨 접해 본 글귀입니다
덕분에 또 하나 배웠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유봉 2018-04-26 22:51:24
칼럼을 쓰실때 매번 동서양 고전을 함께 인용하니 논리적이며 쉽게 이해갑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