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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라에 도착한 이민자에게 건네는 위로
도착
숀 탠 저 | 사계절 | 1만 9600원

남자는 짐 가방을 싸며 가족과 이별을 준비한다.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회색빛 암울한 도시는 거대한 짐승에게 점령당한 듯 거리마다 불길하고 긴 꼬리들이 넘실거린다. 그 거리를 지나 닿은 기차역에서 가족은 눈물로 인사를 나누고, 남자는 도시를 떠난다. 도시를 떠난 남자는 배를 탄다. 배에는 남자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배에서 내려 도착한 낯선 이국의 땅은 처음부터 난관이다. 입국 심사에서부터 남자는 여러 가지 절차에 곤혹스럽다. 말도 통하지 않으니 손짓발짓을 해가며 진땀을 뺀다. 이제 남자는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이 낯설고 어렵고 무섭기만 하다. 숙소에 도착하니 낯선 동물이 있다. 낯선 동물은 남자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고,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낯선 곳에서 남자의 적응을 도와주는 것은 낯선 타인과 같은 처지의 난민들이다. 남자가 버스표 사는 것을 도와준 이는 아동노동에 시달리던 고향 땅을 탈출해 이곳에 정착한 여성이고, 식료품 구입을 도와준 이는 인종청소를 피해 온 일가족이며, 어렵게 취직한 공장에서 짧은 휴식 시간에 물 한 잔을 건네준 이는 전쟁에 동원돼 숱한 동료들과 한쪽 다리를 잃은 뒤 고국을 떠난 늙은 상이 병사다. 그렇게 적응한 남자는 이윽고 고향의 가족에게 일자리와 머물 곳을 마련했다는 소식과 약간의 돈을 담은 기쁜 편지를 띄운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변함없이 단란한 가족사진. 이제 익숙해진 딸아이가 식료품 가게로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두리번거리는 여자를 보고 다가가 길을 안내해 준다. 이 모든 이야기의 흐름이 칸과 칸 사이의 숨 막히는 긴장감과 정교한 인물 묘사가 적절하고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낸다.

그래픽 노블은 종이 위에 세워진 가장 정교한 건축물이라 일컬어진다. 그래픽 노블은 1960년대 후반에 최고의 만화가이자 이론가였던 윌 아이너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복잡한 스토리라인, 심각한 주제, 실험적인 연출, 소장용 앨범 형식의 제본, 독립적인 출판 등의 요소들이 그래픽 노블을 완성한다. 일본에서는 그래픽 노블을 특징짓는 장편의 스토리가 주류를 구축하고 있고, 남미에서는 정치적 억압의 상황에서 굴절된 이야기를 은유의 그림으로 묘사하기도 한 리얼리즘의 걸작들도 탄생했다. 가장 뛰어난 화가의 그림과 가장 뛰어난 소설가의 글이 만난다고 해서 그래픽 노블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픽 노블은 그와는 전혀 다른 종이 위에 세워진 가장 정교한 건축물이다. 작은 종이 위에 작가의 상상력과 정교함으로 표현되는 미학적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캐릭터와 주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작가의 철학과 진실이 반영된다. 단언컨대 단순히 만화로 불리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장르다.

지난 7월에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 상 후보에 그래픽 노블이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 닉 드로나소의 그래픽 노블 사브리나(Sabrina)다. 사브리나는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단서를 남기고 사라진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로, 이 과정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맨부커상 50년 역사상 그래픽 노블이 후보 명단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어떤 이는 숀 탠의 ‘도착’을 그림책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말 한 마디 없이도 이야기의 흐름을 그림 한 장 한 장으로 표현해 내고 이주난민들의 어렵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음이다.

숀 탠(Shaun Tan)은 1974년 서호주 Perth에서 태어나 Fremantle에서 자랐다. 쓰고 그린 작품으로 빨간 나무, 잃어버린 것, 도착 등이 있으며 그 중 ‘잃어버린 것’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2011년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평범하면서도 묘한, 로컬인 동시에 범세계적인,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무서운, 친숙하면서도 낯선, 부랑아 같은 동시에 우아하다는 평이 있다. 소년 시절 그는 시와 이야기에 삽화를 넣거나 공룡, 로봇, 우주선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예술적 재능이 눈에 띄었고, 11세에 Twilight Zone(TV시리즈&책)의 팬이었는데 그 시리즈에 영향을 받아 짧은 이야기들을 썼다고 한다. 탠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던 열망의 증거로 한 뭉치의 거절 편지를 갖고 있다고 회고한다. 16살이었던 1990년 그는 호주 잡지 Aurealis에 첫 삽화를 그렸다. 처음 일을 할 때 그는 펜, 잉크, 아크릴, 목탄, 스크래치보드, 복사기, 리놀륨판(Linocuts)과 같은 흑백미디엄을 사용했는데, 최종 인쇄물이 흑백으로 출력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도 일을 시작할 때 연필로 일반 복사용지에 스케치를 그림으로서 시작을 한다. 스케치들은 여러 번 다른 버전으로 추가되거나 생략되면서 재생산된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가위를 사용할 때도 있으며 이러한 꼴라주 아이디어는 작업 초반뿐만 아니라 최종작품에도 쓰이기도 한다. 탠은 스스로가 느리게 일하는 타입이며 자기 작업을 많이 수정한다고 말한다. 그는 상실과 소외에 관심이 있고, 자연적 정의감(naturatl justice)에 아이들이 특히 잘 반응한다고 믿는다. 그는 스스로가 아이디어의 번역사와 같다고 느끼며, 그의 작품이 필름과 음악으로 적용된 것에 기쁘다고 한다.

숀 탠은 작가의 말에서 “지난 4년 동안 책 작업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신세를 졌다. 아버지를 비롯해 여러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많은 사람들의 수기에 신세를 졌다”고 말한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작가의 작업과 이주민들에 대한 문제제기 등이 돋보이는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김옥선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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