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 산을 통해 겸손함 배워 삶의 질을 높이자”
상태바
“변치 않는 산을 통해 겸손함 배워 삶의 질을 높이자”
  • 취재=한관우/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0.20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향인 인터뷰<16>

홍성출신 산악인 유태헌
유태헌 산악인이 모교인 홍성고등학교총동문회 자문위원 자격으로 모교 관련 행사에 참여해 환하게 웃고 있다.

북한산 등산을 했다가 매료돼 산행 시작, 지금까지 500여 차례 올라
한동안 KBS에 출현해 올바른 등산문화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태백산맥은 백두대간·차령산맥은 금북정맥으로, 백두대간·금북정맥 종주
재경홍동향우회산악회 초대회장, 회원 300명의 면단위 산악회 활성화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이 계속될 때 산과 함께 산이 되었던 분들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산악인 김창호 대장 등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와 네팔인 셰르파 등 히말라야 등반 도중 사망한 산악인 9명에 대한 추모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어떻게 오르느냐?는 끊임없이 산을 향하는 산악인들의 화두”라며 “자신의 근육만으로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산악인의 정신이야말로 자연을 존중하며 동시에 뛰어넘고자 하는 위대한 정신”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계제에 홍성 홍동출신으로 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 ‘산꾼 유태헌’이라 불리거나 ‘산하면 유태헌이지’라고 불리는 유태헌 산악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재삼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번에도 ‘다음에 하지~’라는 말미에 위와 같은 ‘산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며 ‘산악인 유태헌’의 인터뷰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삶의 과정에서의 직책이 어느 어느 회장, 어느 대표이사, 어디어디 상임고문 등을 비롯해 숱하게 많은데, 직업 이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산꾼 유태헌’을 ‘산악인 유태헌’으로 부르기로 했다. 공식적인 인터뷰를 요청한지 5여년 만에, 산과 관련한 인터뷰를 요청한지 2년여 만에 ‘인터뷰를 고사하는 선배’를 간신히 넘어 겨우 허락된 인터뷰는 기자생활 30여 년 만에 이번이 처음인 듯싶다.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인터뷰를 고사하는 대신 산과 관련된 취재를 부탁했더니 그것은 단박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물로 지난 2010년부터 2년 여간 ‘백두대간 종주기’를 35구간에 걸쳐 홍주신문에 연재했으며, 2013년에는 공동취재로 ‘금북정맥 탐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산행시간만도 10여 시간을 넘기는 ‘백두대간 종주기’와 충청의 산맥을 찾아 산과 관련한 사연을 찾아본 ‘금북정맥 탐사’는 홍주신문 애독자뿐만 아니라 많은 산악인들에게 지금까지 오롯이 회자되고 있다.

■ 직원들과 체력단련 위해 등산 시작해
홍성출신의 산악인 유태헌은 1946년 홍동면 금당리에서 태어나 금당초등학교(6회), 홍성중학교(12회), 홍성고등학교(20회)를 졸업했다. 홍성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야간학교를 운영하며 당시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야학운동은 수년전까지 홍성에 있었던 청석수련원으로 발전하게 됐던 사연을 아는 사람은 거의가 알고 있다. 이 청석수련원은 홍성의 어려웠던 인재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줬고, 이를 통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정거장이 됐으며, 지금은 그들이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보이는 인재로 성장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후 1980년에는 (주)HKENG 설립해 IBM, 삼성 SDS, POSCO 등 협력업체로 등록해 전산실공사 등을 진행했으며, 금융(신한은행, 하나은행, 대우증권 등), 유통(현대백화점, 애경백화점, 미도파백화점 등), 건설(현대건설, 대림산업, 극동건설 등), 산업(POSCO,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공기업(법무부, 총무처, 석유공사 등) 등을 망라한 최첨단 전산실공사의 제1인자로 자리매김하며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삶의 과정에서 1980년대 후반 직원들과 함께 체력단련을 위해 북한산 등산을 했다가 북한산에 매료돼 산행을 시작하게 된지 30여년, 지금까지 북한산에만도 500여 차례는 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꾼 유태헌은 북한산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유명한 산을 오르며 100대 명산, 백두대간, 한남정맥, 한북정맥, 금북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등을 종주하기도 했다. 이러한 산행과정에서 4050수도권산악회, 코뿔소산악회 등 전국적인 산악회를 조직해 회장, 고문, 산악대장 등을 맡으며 산에 대해 전문가가 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산꾼 유태헌’을 ‘산악인 유태헌’으로 부르는 이유다.

‘산악인 유태헌’은 한동안 KBS 방송에 출현해 올바른 등산문화를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산에 오르기 전 간결하고 명쾌한 등산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 역사, 인물, 전설 등 산과 관련된 설명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데서 묻어나오는 구수한 입담과 박식한 산 이야기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알리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산 박사’로 소문이 자자한 유명인사다.

■ 백두대간 찾기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어
‘산악인 유태헌’은 본 기자와 함께 금북정맥을 종주하면서 느낀 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그 어느 산악인 못지않을 정도로 정말로 대단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산경표에 의하면 한반도의 산줄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나타낸 체계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었던 것이 일제시대 민족의 얼을 끊기 위해 태백산맥, 차령산맥 등으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태백산맥은 백두대간으로 차령산맥은 금북정맥이라고 늘 강조하며 백두대간 찾기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이유다.

홍주신문 애독자는 물론 많은 산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2년여 동안 연재됐던 ‘백두대간 종주기’연재 당시 종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묻자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천왕봉의 장엄한 일출이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소백산 구간으로 2010년 1월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새벽에 체감 온도 영하 40℃에 동상으로 손가락을 절단한 회원이 2명이나 있었다”며 “겨울산행은 철저하게 장비를 준비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가장 가고 싶은 산을 묻자 ‘설악산’이라고 대답한다. “지리산에는 웅장함이 있지만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겸비한 설악산이야 말로 세계 제일의 명산이라고 생각한다”며 “4계절 중 겨울 설악산의 설경을 제일 좋아한다. 설악산은 멀어서 자주 못가는 대신 설악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 북한산을 자주 오른다. 100개가 넘는 등산코스는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 제일은 사기막골에서 해골바위로 호랑이 굴을 통해 백운대 정상으로 오르는 숨은 벽 코스다. 특히 가을단풍은 설악산에 버금간다”며 “올 가을에 꼭 가보라”고 추천하기도 한다.

산악인 유태헌은 고향인 홍성에 내려올 때 마다 용봉산에 오른다고 말한다. “용봉산은 봉황이 날아올라 천하가 크게 안녕하며 미래를 열어주고 하늘의 땅인 별로 인도하는 용의 기운이 충만한 신령한 산”이라고 설명한다. “고려 때에는 북산, 조선에서는 용봉산, 팔봉산 등으로 불렸고 근대들어 홍성지역은 용봉산, 예산은 수암산으로 정착됐다. 인조 때 이수광은 ‘지붕선생집’에서 팔봉산(용봉산)은 기암괴석이 많아 작은 금강산이라 부른다. 해발 381m에 높지 않은 산이면서 100대 명산에 속하는 금북정맥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고 극찬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 재경홍동향우회산악회 초대 회장을 맡아
산악인 유태헌은 산악회에서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산에만 다니다가 재경홍동향우회 복봉규 회장의 요청으로 산악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맡아 회원이 300명이 넘는 면단위 제일의 산악회로 활성화 시켰던 장본인이다. 재경홍성군민회 산하의 홍주산우회 고문, 재경홍성고등학교총동문회 산하 홍성고산악회 산악대장을 맡는 등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애정과 열정은 홍성고등학교총동문회 활동에서도 두드러진다. 선후배 할 것 없이 홍성고출신과 홍성사람들에게는 만인의 형님과 아우로 불리는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등산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산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둘째는 회원 상호간에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며, 셋째로는 오르는 산이 크던 작던 그 자리에서 우뚝 솟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산을 통해 겸손함을 배워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도 산이 좋아 북한산 자락인 서울의 불광동으로 이사해 조석으로 북한산에 오르며, 칠십이 넘었지만 언제나 산에서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웃음을 주고 건강을 지키는 ‘산악인 유태헌’은 바로 ‘홍성사람’ 이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