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마을에서 막내 이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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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마을에서 막내 이장되다!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9.02.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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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 인산리 임영택 이장
마을주민들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임영택 이장이 초록 모종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서른 살에 고향에 돌아와 아이 보면서 친환경 농업
사소하나 기본적 마을 일… 주민관계 조율 이장 책무


서른 살이 되던 해 청년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서울로 상경했으니 18년만이었다. 물론 첫 해에는 아버지에게 쫓겨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무작정 짐을 싸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청년은 마을에 정착했고 농부가 되었고, 마을에서 막내가 됐다. 그 때도 막내였는데 지금도 막내다. 금마면 인산리 석산마을 임영택 이장은 지난달 2일자로 마을이장이 됐다.

어릴 적 고향을 떠났던 임 이장은 자신을 서울 유학파라고 소개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았던 임 이장은 합격통지서라는 작은 종이 하나에 의문이 들었다. 중학교 3년 내내 공부를 했는데 겨우 그 결과가 작은 종이 하나라는 사실에 허무해졌다. 고등학교 입학 후 그는 문예부에 들어갔다. 교육주체에 대한 고민을 했고, 스스로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며 책도 많이 읽고,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일들을 하며 그 고민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다. 이후 군대를 가게 되면서 고향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농사를 짓기로 하면서 가족 4명이 비닐하우스를 짓고 딸기를 심었다. 딸기를 심었던 첫 해 많은 사람들이 다 버리라고 했던 딸기는 그 해 마을에서 가장 많은 수확을 냈다.

“그 당시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는데 딸기를 그냥 와서 따서 먹고는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먹는데 농약을 사용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때부터 친환경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에 무농약인증을 받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실패와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경매 가격이 안 나올 때마다 좌절했다. 홍성유기농조합 설립 초기 조합원으로 참여하며 유기농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생김에 기뻐했다.

“농부는 직업이다. 나 스스로 재미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그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농사다. 지금도 모를 밭에 정식해 심은 뒤 막 싹이 터오는 그 모습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작물을 심는다.” 임 이장은 이장이 되고 나서 아주 사소하지만 기본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이장 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공문만 한 무더기다.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이장님들은 거의 대부분 오래 일해 왔던 분이니 빨리 처리하겠지만 초보인 나로서는 업무 파악하는데만 한 달이 걸렸다.”

어느 날 쓰레기를 태우지 말라는 마을방송을 하는데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를 태우지 않으려면 쓰레기를 태우지 않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처음 고향에 와서 가장 큰 불편함이 쓰레기 문제였다. 분리수거를 해도 버릴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내 불편함으로 치부했던 문제를 불편하지 않고 주민들이 준법을 지킬 수 있게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다. 분리수거한 쓰레기도 자원화 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볼 수 도 있을 것 같다.”

1971년생인 그는 고향에 돌아왔을 당시에도 마을에서 막내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막내다. 20년을 넘게 마을에 살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이장이 되고서 알았다. 이장직을 보는 일이 만만하지 않고 세세한 부분을 다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장이 되고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다. 마을주민들의 관계를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조율하는 일,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장의 역할과 임무다. 이장 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젊은 이장 임영택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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