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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향기

어머니는 쑥 향기를 머금으며 어느새 쑥을 뜯던 과거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어린 시절 쑥만 뜯어도 행복했던 그 때로 말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께서 저희 집에 놀러오셨습니다. ‘볼거리가 많은 관광지에 가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날씨가 좋다며 ‘쑥이랑 씀바귀, 머위 뜯고 싶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마트에서 파는 쑥은 향이 안나”라고 불평을 합니다. 어머니는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부려 앉아 쑥과 씀바귀, 머위를 한가득 뜯어놓았습니다. “옛날에 이렇게 쑥 뜯어다 많이 먹었어”하며 환한 소녀웃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향기’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매연 속에 핀 꽃은 그 향기가 순수하게 와 닿지 않았고, 신선하지 않은 농작물은 본연의 향은 사라진 채 맛만 남아있었습니다. 농촌의 시골마을에 살게 되면서 ‘향기’라는 단어가 일상 속에 피어났습니다. 라일락 꽃향기, 매화꽃 향기, 딸기 향, 토마토 향기, 너무 많아 헤아릴 수도 없네요. 나뭇잎의 빛깔이 완연하게 초록빛으로 물들어갈 때쯤이면 꽃의 향기도 좀 더 짙어집니다. 여름으로 향하는 요즘, 유독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라일락 꽃’ 향기는 매혹적입니다. 그 향기가 온몸에 퍼져 젊은 여인이 된 것 마냥 설레입니다.

진한 꽃향기가 아니어도 농촌 마을에는 시기별로 마을에 퍼지는 향기들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은 대부분 딸기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겨울부터 수확되는 딸기가 여름으로 들어서면 빠른 속도로 물러집니다. 무른 딸기는 저장성은 좋지 않지만 맛이나 향기가 더욱 진합니다. 그래서 딸기하우스를 지날 때면 새콤달콤한 향기가 숨을 들이키는 순간 ‘훅~’하고 들어옵니다. 그 순간 눈앞의 모든 것이 수채화 그림을 그린 듯 풋풋하고 상큼하게 보입니다. 어느새 저는 수채화 그림속의 주인공이 됩니다.

길을 걷다가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 순을 따고 있는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아저씨는 대뜸 “난 이 냄새 때문에 토마토 심어”라며 순을 따고 향기를 음미하며 행복해하는 아저씨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토마토 열매의 향기보다 줄기의 순을 딸 때 강한 토마토 향기가 납니다. 이 향기는 토마토를 심고 기른 사람만 아는 향입니다. 향 때문에 토마토를 계속 심는다는 아저씨.

‘향기’는 텃밭의 농작물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텃밭에서 갓 따낸 오이, 상추, 가지, 옥수수 등에는 고유의 향기가 있습니다. 갓 수확한 신선한 농작물을 생으로 먹을 때 가장 향기가 진합니다. 하지만 향기란 녀석은 성미가 급해 갓 수확하고 몇 시간 후면 맛만 남긴 채 아쉽게도 떠나버립니다. ‘향기’는 평온했던 행복을 기억해내는 가장 좋은 수단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매일 살아가는 하루는 고통과 행복, 짜증과 평화, 이 모든 것들이 함께 버무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만 강하게 자리 잡아 나를 괴롭힙니다.

만약 행복의 느낌을 떠올리고 싶다면 ‘기억속의 향기’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어머니에게는 쑥 향기가 순수한 행복의 느낌을 갖게 하고, 이웃집 아저씨는 토마토의 향기가 농사를 짓게 만들고, 저에게는 라일락 향기가 젊음의 기운을 찾게 만듭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기억속의 향기가 있으신가요?

홍순영 주민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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