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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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패턴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9.08.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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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공적인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반복된 패턴을 중심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약속한 날이 됐다. 그들에게 안겨줄 물품이 큰 박스에 담겨있었다. 하지만 대천항 선착장에서는 심한 안개로 출항할 수 없다고 했다. 순간 자연의 위엄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 하지만 다음날, 오후 2시 배를 타고 외연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호도, 녹도를 지나 2시간 30여 분만에 도착한 선착장에는 외연도초등학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렘을 안고 외연도초등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바라본 학교 풍경은 깔끔함이었다.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고, 한쪽에는 그네를 타다가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갔다. 필자와 눈을 마주치자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등을 물었다. 처음 만났음에도 상냥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교장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후 동행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스마트폰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필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필자를 경계하는 표정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올 한 올 마음의 빗장을 풀어냈다. 이곳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겪는 애로사항, 중매결혼으로 섬에 왔지만 아들을 잘 키우고 싶은 엄마의 기대, 늦은 나이에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애로사항, 말이 통하지 않은 타국에서 온 이민 여성의 고충 등이 조금씩 전달됐다. 그 마음을 잠시 접어 뒀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모였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삶의 이야기들은 엉킴과 풀림을 반복하면서 그들 안에 있는 소통의 허기짐이 느껴졌다. 자신들이 느끼는 허기짐은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서 세상과 만날 때 그 허기짐을 경험하지 않기를, 아니 그 허기짐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올 2월 말, 인터넷·스마트폰 예방교육을 위해 충남 도내에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외연도초등학교에서 예방교육을 신청했고, 5개월만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학교 선생님은 “보통 타 기관에서도 교육 일정이 잡히지만 안개로 결항되면, 이후 취소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필자도 취소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은 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일정을 마친 후 육지로 돌아와야 하는데 안개로 결항될 수 있다는 얘기에 필자의 마음은 오락가락 했지만, 이들은 태연했고, 넉넉한 마음으로 바다와 안개를 바라보기만 했다.

외연도는 보령시에 속해 있는 섬으로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서해의 고도(孤島), 바람이 잔잔한 새벽이면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비바람과 태풍, 파도와 안개가 주는 위협 앞에서 인간의 한계와 포기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삶이었다. 필자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안개로 인해 삶의 계획을 변경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필자가 성장한 곳은 산세가 험한 내륙지방이었기에 오히려 내면과의 싸움에 익숙했고, 그 마음을 견디고 이겨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삶이었다. 머리로는 세상과 마주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지만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내면의 소리에 민감하고, 그 마음을 먼저 추스르고 다독인 후 다시 일어서는 반복 패턴이 있는 것이다. 안개로 인해 외연도에 갈 수 없을 때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다리는 이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섬에서 성장한 이들이 갖는 삶의 자세와 나의 반복 패턴은 다르지만 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각자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형성된 그 패턴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순간에도 내 마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최명옥<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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