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사람의 손길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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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사람의 손길을 거부한다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9.09.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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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되어버린 걸까” 최근 서점을 둘러보다 발견한 한 문장이 가슴 한 켠에 박혔다.

큰 아들은 올해 26이다. 엄마가 된 지 26년째이다. 26년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선택되어진 것일까. 되돌아보면 나의 선택같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다. 남들이 다하는 삶이기에 나 또한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간 것도 없지 않다. 내가 엄마가 된 것은 아마도 남들과 다른 삶에 대한 두려움과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조바심 사이 어디 즈음에서 이뤄진 선택 같다. 삶의 대부분은 부조리하다. 내가 이뤄낸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 나와 상관없는 것들로 내가 구성될 경우가 많다. 특히 엄마와 같이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선택까지도 말이다.

최근 충남 천안에 있는 북한 드림학교에서 집단 상담이 진행됐다. 그곳에는 10대부터 20대까지 구성된 중국과 북한 출신 아이들이 있었다. 국가와 민족이 다른 아이들을 집단으로 상담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도 아이들은 다 똑같겠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행 후 결과 회의를 하면서 착각이고 편견임을 알았다. 아이들은 똑같지 않았다.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집단상담에 대한 중국 아이와 북한 아이의 반응은 달랐다.

가장 눈에 띠는 차이는 상담을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북한 아이들은 스마트폰 과의존에서 보다 쉽게 벗어난 반면, 중국 아이들은 완강하게 스마트폰을 붙잡고 놓지 못했다. 아이는 다 같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차이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레 서점에서 발견한 문구를 떠오르게 했다. “아이는 아이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면 아이가 되어버린 걸까?”

불행하게도 우리의 생은 세계에 내던져진 채로 시작된다. 내가 태어난 공간과 시간, 국가와 가족, 문화와 제도, 관습과 윤리 그 어느 하나도 스스로 선택한 게 없다. 의도와 상관없이 나란 존재는 이미 주어진 것들과 관계하고 대립하며 ‘나’라는 정체성을 구축한다. 나는 이미 순수한 내가 아닌 낯선 이물질들이 진흙처럼 엉켜서 구성된 ‘나’다. 순수한 나란 없다.

중국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된 채 살아왔다. 그것은 이미 그들을 구성하는 하나의 정체성이다. 지금 스마트폰 과의존을 벗어나게 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스마트폰은 유년 시절의 향수이자 본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이는 아이가 되어버리는 존재’다. 아니 아이 뿐만 아니다. 모든 인간은 세계와 맞물리며 정체성을 구성한다. 너무나 비인간적인 상황이 인간적 존재를 규정한다. 비극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아이는 아이가 되고 싶다’는 주체의 힘을 긍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미셸트루니에는 사랑의 야찬에서 말한다. 집안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사람의 손길을 허락하지만, 야생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사람의 손길을 거부한다. 모니터가 일상을 지배하는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는 결코 모니터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정보화 사회가 심화되며 아이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이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미 그들의 숙명이다. 친구와 세계에 대한 직접성은 후퇴하고 조그만 모니터 세계가 그 관계성을 매개하는 추상의 세계, 그 속에 아이들이 머물고 만족하는 것은 시대의 아픔이다.

아쉽게도 스마트폰은 대세이며, 모니터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고 구축할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바란다면, 스마트폰에 지배받지 않는 공간을 조성하고 세계와 직접적으로 관계할 수 있는 토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와 상상을 시작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순수한 나는 없다. 나와 상관없을 것 같은 내 주변과 세계를 보다 인간적으로 가꿔야 할 이유다. 그러므로 아이일 때부터 스마트폰 과의존에 노출되지 않도록 부모님들의 세심한 관리와 주의가 요구된다.

최명옥<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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