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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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노을
  • 전만성
  • 승인 2009.07.0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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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 페츄니아(유채, 30호)

 

 

 

 

 

 

 











지난여름 아주 더운 날 독서실에 간 딸아이를 마중하러 나갔다. 오후의 태양이 아직 이글거리더니 어느 순간 뚝 떨어지며 빛깔고운 노을을 만들어 냈다. 

"아빠! 저 하늘 좀 봐! 우리 저 쪽으로 돌아서 하늘 보고 가!"

방금 전에 학교 숙제가 밀려서 얼른 집에 가야한다던 아이가 노을을 보고 마음을 바꾼 것이다. 나도 그게 좋겠다 싶어 하늘이 좀 더 잘 보일만한 길로 돌아서 오는 데 집 가까이 오자 "한 바퀴 돌고 가면 안 돼?" 했다. 딸아이의 그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 

복잡한 길을 빠져 나오니 푸른 들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큰 길을 버리고 좀 더 한적한 길을 택했다. 처음 가는 길이라 그런지 큰 길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풍경마다 신기하고 새로웠다. 군데군데 예쁘게 지은 새 집들이 보이고 길가에는 여름 꽃들이 한들거렸다. 

딸아이는 보는 것마다 탄성을 지르며 "예쁘다! 참 예쁘다!" 연발했고, 우리는 언제 저런 집을 짓느냐고도 했다. 고등학교에 가면서 딸아이는 유난히 자연의 변화에 깊이 반응을 했고 휴식에 목말라 했다. 

지난봄에는 딸아이와 벚꽃 동산으로 김밥 두 줄을 사 가지고 소풍을 간일도 있었다. 어쩐지 김밥이라도 먹어야 기분이 더 할 것 같아서였다. 그 동안 우리 둘 다 너무나 정신없이 시간에 끌려 다녔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하여 보고 곧바로 나갔다. 창문 하나만 열어도 환히 보이는 벚꽃 동산이 그 동안 우리 눈에는 뜨이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했다. 

벚꽃은 끝물이었다. 이파리가 비죽비죽 나오고 있어서 화사함은 덜했지만 그런대로 기분을 낼 수 있었다. 딸아이와 나는 조금 걷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김밥을 펼쳤다. 김밥위로 꽃잎 하나가 날아와 앉았다. 어디서 날아 왔을까? 허공을 올려다보니 꽃잎은 나비 떼같이 너울너울 춤추며 내려앉고 있었다. 

"아빠! 우리 여기 자주 오자!"
"여기 좋으니?"
"더 개발되기 전에 이런 것들 실컷 보고 싶어!"

그러고 보니 동산 아래쪽에 아파트 신축공사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이 동산이 아파트 주민에게는 더 없이 좋은 산책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의 그 큰 덩치는 벚꽃의 존재를 압도해 버리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구나! 우리 집에서도 하늘이 반쪽만 보이겠구나."
 
딸아이와 나는 김밥을 다 먹고 언덕을 내려와 논길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딸아이는 보이는 것 마다 "참 예쁘다!" 찬탄을 하곤 했다. 별스럽지도 않은 것에 정을 주는 다감한 아이가 '지옥' 이라는 입시생활을 견디는 나름의 노력이 대견하면서도 짠했다. 

갈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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