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글과 믿음이 합일된 전인적 인간, 만해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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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글과 믿음이 합일된 전인적 인간, 만해 한용운
  • 전상진 기자
  • 승인 2009.09.02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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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홍성의 역사·문화 인물 다시 보기. 1

충청도 내포, 홍성(옛 홍주) 지역은 예로부터 역사적 · 문화적 정신이 깊다. 이 지역에 살다간 인물들은 그래서 투철한 역사관과 민족관, 문화인식을 갖고 한 시대를 풍미하였고, 온 몸을 던져 시대정신을 구현하며 살았다. 무민공 최영 장군, 매죽헌 성삼문 선생, 만해 한용운 선생, 백야 김좌진 장군, 남당 한원진 선생, 이응로 화백 등 그들이 있었기에 홍성지역이 충청의 중심이 될 수 있었고, 드높은 자긍심을 지닐 수 있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홍성의 역사 · 문화 인물들을 다시 되돌아보고 재조명함으로써 다시 한 번 홍성인의 자부심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편집자 드림>

만해(萬海)는 중이냐? 중이 아니다. 만해는 시인이냐? 시인도 아니다. 만해는 한국 사람이다. 뚜렷한 배달민족이다. 독립지사다. 항일투사다. 강철 같은 의지로, 불덩이 같은 정열로, 대쪽 같은 절조로, 고고한 자세로,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최후의 일각가지 몸뚱이로 부딪쳤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굳세게 결투하였다. 꿋꿋하게 걸어갈 때 성역(聖域)을 밟기도 하였다. 벅찬 숨을 터드릴 때 문학의 향훈(香薰)을 뿜기도 하였다. 보리수의 그늘에서 바라보면 중으로도 선사로도 보였다. 예술의 산허리에서 돌아보면 시인으로도 나타나고 소설가로도 등장하였다. 만해는 어디까지나 독립지사였다. 항일투사였다. 만해의 진면목은 생사를 뛰어넘은 사람이다. 뜨거운 배달의 얼이다. 만해는 중이다. 그러나 중이 되려고 중이 된 건 아니다. 항일투쟁하기 위해서다. 만해는 시인이다. 하지만 시인이 부러워 시인이 된 건 아니다. 님을 뜨겁게 절규했기 때문이다. 만해는 웅변가다. 그저 말을 뽐낸 건 아니고,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피로 뱉았을 뿐이다. 어쩌면 그럴까? 그렇게 될까? 한 점 뜨거운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도사렸기 때문이다. - 조종현이 쓴「만해 한용운」의 <서시(序詩)>중에서

오늘 이 시대의 만해는 무엇인가

2009년 오늘, 우리에게 만해는 무엇인가? 오늘 이 시대의 만해는 무엇인가? 경기불황의 지속과 신종플루 감염 확산, 노무현 ․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등 힘든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만해는 도대체 무엇인가?

1879년 8월 29일, 한말 개항 시기에 충청도 홍주 땅 박철마을(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서 속명 한유천(韓裕天)으로 태어나, 1944년 6월 29일 조국 광복을 1년여 앞두고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 신경통, 각기병, 영양실조 등의 합병증으로 입적, 망우리 묘소에 만인 대중과 함께 안장된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만해가 태어나던 무렵은 결코 한 인간이 정상적으로 평탄한 길을 걸어갈 만한 시대가 아니었다. 개항과 함께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의 침탈이 이어졌고, 동학농민운동과 항일의병이 전개되는 가운데 일제강점기의 암흑의 시대가 이어졌다.

가장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 가장 힘든 시기에 운명을 달리한 만해의 시대, 지금 우리가 다시 만해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다시 만해를 찾아야 한다.

혁명가와 선승과 시인의 일체화

만해는 한국근대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인적(全人的) 풍모를 지니고 있다. 그는 삶과 글과 조국독립의 믿음이 합일된 전인적 인간으로 오늘의 우리들이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올바른 행동과 윤리를 모범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해의 참모습을 시인 조지훈은 ‘혁명가와 선승과 시인의 일체화’에 있다고 한 것이나, 평론가 염무웅이 ‘그의 진정한 탁월성은 이 세 가지가 각기 서로를 전제로 하는 놀라운 종합을 이룩한 데에 있다’ 고 한 평가가 모두 만해의 전인적 풍모를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는 만해 한용운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한국 최초의 근대 민족시인, 그리고 님의 침묵

만해는 평생 뜻한 바를 한 번도 굽히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실천해 나간 사상가로, 임의 상실을 가히 없는 기다림으로 극복해간 문학인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만해는「조선불교유신론」,「불교대전」,「채근담」등을 통해 불교계의 모순된 구조와 불교의 친일경향에 맞서 불교개혁운동을 전개했고, 3․1운동 후 옥고를 치르면서「조선독립이유서(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대요)」라는 명논설을 발표해 조선독립을 현실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웅혼한 기개가 넘치는 명문장으로 임시정부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힘이 됐다.

흔히 만해를 문단외적 시인이라고 부르는데, 어느 동인지에도 속해 활동하지 않고 다른 문인들과 어울려 글을 쓰지도 않고 홀로 오로지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남의 나라 식민지로 전락한 민족적 현실을 ‘진실로 뼈아프게 느끼고, 그 아픔을 처음으로 시 속에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만해는 한국 최초의 근대 민족시인이라 할 수 있다. 임의 상실을 극복의 의지로 형상화한 시집「님의 침묵」은 조국 상실의 아픔을 독립에 대한 의지로 극복한 위대한 혁명가로 시로, 민족의 구원을 열망하는 선구자의 시로, 오늘의 우리에게 아름다운 명상의 서정시로 읽히고 있다.

▲ 매년 홍성에서 만해제가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백담사 만해기념관, 심우장 등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만해 정신을 올곧이 계승하자

이제 다시 만해 정신으로 돌아가자. 과연 오늘을 홍성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만해 정신을 올곧이 계승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만해 정신의 곁가지만 흉내 내고 있진 않는가? 그 드높은 정신을 제대로 계승할 순 없을까?

다른 지역, 특히 강원도 인제 백담사는 만해기념관을 비롯해 만해마을이 조성돼 있고, 만해축전이 국가적 행사로 진행돼 만해 정신을 국내외적으로 선양하고 있다. 그럼 홍성지역은 어떤가?

우선, 만해생가를 중심으로 추진해 온 성역화 사업이 10여 년에 걸쳐 생가, 사당, 체험관, 민족시인 시비공원 등이 조성되어 1단계 성역화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다. 테마가 있는 시인마을 조성이나 만해 사상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제시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만해 유품도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복제품을 제작해서라도 만해 사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해야 한다. 한편, 현재 망우리 묘역에 안장된 한용운 선생의 유해를 생가로 이전하는 문제도 선생의 유족들과 신중히 협의해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역에서는 해마다 만해제가 열린다. 만해제가 열릴 때마다 추진위원들이나 주민들의 의견들이 분분하다. “학문적이며 예술적인 만해제가 되어야 한다.”, “주민 전체가 참여해 체험할 수 있는 놀이마당이 있어야 한다.”, “문학사상에 주목해 전국학생 대상 백일장, 만해시인학교의 지속적인 유치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 또 ‘교육형 문화관광 축제’를 제시하는 의견도 있고, 다른 지역의 만해문화제와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예산 확보와 재정 자립’이다. 전국규모의 만해제를 준비하고자 한다면, 관 주도형 문화제에서 벗어나 민간참여형 문화제로 변모 다양한 형태의 예산 확보를 통해 재정 자립을 이뤄내고, 한편으론 내포축제에서 분리해 인물중심의 독립적인 문화제가 돼야 하고, 다른 지역 만해문화제와도 연계 내실과 규모를 점차 확대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결성 만해생가와 체험관, 시비공원을 적극 활용하고 백담사 만해기념관, 심우장 등과의 지속적인 연계를 통해 만해제 기간 동안 만해 유품 등을 순회 전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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