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사랑의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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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사랑의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 현 자(광천여중 교사)
  • 승인 2009.11.1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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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자(광천여중 교사)
설레는 마음으로 교단에 선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교직경력 근 삼십년이 가까운 중견교사가 되었다. 뒤돌아보니 잘한 일은 기억에 없고, 부족하고 잘못한 일만 부끄럽게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크고 작은 나의 꾸지람으로 마음 아팠을 제자들에게 늦게나마 하나하나 사랑을 전해야겠다. 

제일 먼저, 제자 손 군에게 정중히 사과를 한다. 두어 해 전 조리실습 시간에 일어났던 일이다. 대개가 그렇듯 빠듯한 수업시간 안에 음식을 조리하고, 시식하고, 조리대와 식탁을 깨끗이 정리하게 하는 일은 가정과교사들에게는 무척 힘이 든다. 만들 때까지는 그래도 교사의 지시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막상 시식시간이 끝나면 뒷정리는 어찌됐건 슬금슬금 교실로 내빼기 일쑤다. 일 년에 한두 차례 별러서 하는 실습이니만큼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아예 나도 학생들과 함께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것이 속편할 때가 있다. 

손 군은 이때 나한테 꾸지람을 들은 학생이다. 각 조별로 빠른 시간 내에 정리를 해줘야 다음 반 실습이 지장 없겠는데, 가만 보니 손 군은 집에서 가져온 제 플라스틱 찬통만 손에 들고 치울 생각을 안 하고 뒷전에 서 있었다. 나는 냅다 소리를 쳤다. "야, 너도 좀 치워라!" 그러나 손 군은 꿈쩍을 안한다. 보다 못해 나는 손짓으로 손 군을 불렀다. 쭈뼛쭈뼛 앞으로 나오는 데다 대고 또 소리를 쳤다. "야, 이놈아, 너 어째 그러냐, 다른 애들 치우고 있으면 너도 좀 협조해서 얼른 치워야지!" 그래도 뭔 말인지를 못 알아듣는 녀석의 표정이 답답하여 "제발 그, 손에 들고 있는 것 좀 내려놓고, 치우란 말이야!" 호통 소리에 그때서야 들고 있던 것을 조리대 위에 내려놓더니, 설거지는 고사하고 돌아서서 뚝뚝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일순간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툭탁거리고 장난만 치던 녀석들이 눈치껏 행주며 수세미를 빼앗아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분주한데, 슬쩍 보니 녀석은 연신 눈물만 닦아내더니 아예 실습실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학생과 좋게 화해하지 못하고 인근의 다른 학교로 전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아주 가까이에서 손 군을 마주치게 되었다.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어 안부라도 물으려 했는데, 가까이 다가서자 언제 봤냐는 듯 아주 무표정하게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손 군이 맘에 걸린다. 고대하고 고대했을 조리실습, 손 군은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 나는 좀 더 부드럽고 친밀하게 학생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하고 도움을 청했어야 했다. 마음의 상처 위에 알량한 내 가르침은 얼마만큼이나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렸겠는가. 

요즘 성과급이나 교원평가 앞에 교사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젊은 교사는 패기와 열정으로, 나이 든 교사는 열정은 다소 떨어지나 교단의 많은 경험과 지혜로 학생을 대한다. 교육활동에서의 성과는 지금 당장 연내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탁월한 주무교사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수레와 그 바퀴이다. 교사 간 긴밀한 협동에 의한 종합작품인데, 개인별 수공정도를 어떻게 구획할지 의문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경쟁심리로 지금보다는 다소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지만 향후, 자발적이고 끈끈했던 교사 간의 협조체계와 동료애는 오히려 와해되지 않을까 우려 된다. 

나는 황금마차를 타기 위해 교직에 발을 딛지 않았다. 힘들어도 학생들 앞에서는 늘 사랑의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교사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낄 때, 사르르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온다. 더 늦기 전에 손 군에게 미안함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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